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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책

[제이노엘] [서희] 칼보다 무서운 혀를 가진 사람

by 제이노엘 2016.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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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이노엘입니다.



거란족을 세치 혀로 무찌른 서희 장군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고려가 건국될 무렵 중국은 당나라가 망하고 여러 왕조가 들어선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이때 등장한 거란족은 원래 중국의 동북쪽에 살던 유목 민족으로,


926년 발해를 멸망시키고 고려에 사신3을 보냈지만 태조 왕건은 그들을 무시했었죠.


왜냐하면 발해와 동맹을 맺었다가 배신하고, 갑자기 발해를 쳐서 멸망시킨 나라이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태조는 거란 사신 30명을 귀양 보내고, 선물로 가져온 낙타 50마리를 모두 굶겨 죽였지요. 잔인하게도 말입니다.


왕건의 북진 정책 기억나십니까? 하지만 다른 나라 외교관을 이렇게 대우한 것이 외교적으로 바람직한 일이었을까요?



이후 거란족은 점점 강성해져서 946년에 요나라를 세웠고,


고려는 중국 땅에 새롭게 건국된 송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었습니다.


조광윤이 세운 송나라는 국방력이 매우 약해 고려에게 군사적인 도움을 받고 싶어 했고,


고려는 송나라의 발달된 문화를 받아들이고 싶어했었습니다.



거란족의 원래 공격 목표는 송나라였습니다.


그래서 먼저 송나라를 군사적으로 도와주는 나라들을 하나씩 공격하기 시작했지요.


결국 거란족은 고려로 쳐들어갈 준비를 시작했고, 여진족이 사전에 그 사실을 알려주었음에도 고려는 이를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거란족은 993년부터 1019년까지 약 30년에 걸쳐 고려에 세 번이나 침입해 왔습니다.



고려는 거란족이 쳐들어오자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송나라에 원군을 요청했었습니다.


하지만 송나라는 자국의 국방도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거절했지요.


고려는 962년 광종 이후 수립해 온 송나라와의 국교를 30년 만에 단절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089년 다시 국교가 재개될 때까지 84년 동안 고려는 송나라와 외교 관계를 단절한 채 지냈지요.


아마 거란은 만족스러웠을 만한 결과 입니다.


고려 성종 때 거란족이 쳐들어왔지만 고려에서는 거란과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었습니다.


비록 정종 때 광군이라는 부대를 조직해서 거란의 침입에 대비했지만, 그 후에는 국방 문제에 많이 소홀해 있었기에,


거란의 1차 침입 때 고려 조정의 신하들은 모두들 거란이 원하는 서경 이북의 땅을 떼어주고,


서둘러서 사람을 보내 화평5 맺어야 한다고 했었습니다.


이렇게 불리한 상황에서 등장한 사람이 바로 서희 입니다요.



서희의 외교 담판


거란의 침략 의도가 고려와 송나라의 관계를 끊는 데 있다는 것을 안 서희는 거란족의 장군 소손녕을 만나겠다고 자청했습니다.


소손녕은 찾아간 서희에게 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라고 했지만 서희는 당당하게 말했지요.


“나는 고려 왕이 보낸 사신이니 사신으로 대우해 주시오.”


그리고는 땅을 떼어주지도 않고, 군사를 보내 싸움을 하지도 않았는데도 오히려 영토를 얻어 왔지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요?



서희는 국제 정세를 읽는 눈이 탁월한 외교관이었습니다.


불리한 처지에서 벌인 담판이었지만, 송나라와 거란이 전쟁 중인 관계를 잘 이용했지요.


그래서 거란이 고려 정복에 큰 힘을 쏟기 어렵고,


고려를 견제하는 것에 만족하리라 판단하여 오히려 영토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했지요.


즉 고려가 송나라와 관계를 끊는 대신, 거란으로 가는 길목인 압록강 동쪽 280리 지역을 돌려받기로 한 것입니다.


거란은 뒤늦게 이 지역이 중요한 군사 지역인 것을 알고 되돌려 달라고 했지만, 고려는 거부했지요.


고려는 이 지역에 강동 6주를 설치하고 약속과 달리 거란에 사신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대화를 엿들어 봅시다!


소손녕 : 그대의 나라가 신라 땅 위에 세워졌고, 고구려 땅은 우리 땅인데, 그대들이 조금씩 침식해들어갔다.


서 희 : 말도 안되는 소리! 우리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다. 그래서 나라 이름을 고려라고 하고, 평양(서경)을 도읍지로 하였다.


소손녕 : 그래? 그래도 우리 거란과 국경을 접하면서도, 바다를 건너 우리의 적국인 송나라만을 섬기다니 참을 수 없다.


서 희 : 국경을 접하다니! 그 지역은 여진족이 도적처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거란과 교류하지 못할 뿐이다.

만약 여진족을 내쫓고 다시 우리 땅으로 만들어 성을 쌓고 도로를 만든다면, 거란과 교류하면서 지내겠다.


소손녕 ; 진짜? 그럼 싸울 필요 없이 압록강 부근의 땅을 고려에 주면 되겠군.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지요.


고려가 거란과의 약속을 어기고 사신을 파견하지 않자 거란은 1010년 다시 쳐들어왔습니다.


강조가 목종을 죽이고, 현종을 왕위에 앉힌 강조의 정변을 트집잡아서 말이지요.


이때 고려 개경은 함락되고, 왕은 전라도 나주까지 피난을 떠나야 했지요.


결국 앞으로는 왕이 직접 거란을 찾아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강화 조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양규가 이끄는 고려군은 끝까지 저항하여 거란군을 크게 물리치고 전사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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