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신라·고려의 국가 행사… 왕건은 "연등회 이어가라" 유훈 남겼죠
연등회
부처님 탄생을 축하하는 한국의 불교 행사인 '연등회'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에 오를 것이 확실시된다는 뉴스가 나왔어요.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판소리, 강릉단오제 등에 이어 한국에서 등록하는 21번째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되는 것이죠. 연등회는 언제 시작한 어떤 행사일까요?
◇신라 때 시작한 국가 축제
등불을 켜고 행진하며 가족, 이웃과 나라가 평안하기를 비는 연등회는 그 기록이 서기 6세기 신라 때부터 나옵니다. 진흥왕 12년인 서기 551년 봄에 신라에서 가장 큰 절 황룡사에서 열렸고, 겨울에 열리는 팔관회와 쌍벽을 이루는 국가적 행사였다고 해요. 팔관회 역시 불교 행사였지만, 훗날 고려 때로 가면 토속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무속적 성격이 더해집니다.
봄밤에 여러 사람이 환한 등불을 들고 행진하는 연등회는 자연스럽게 청춘 남녀가 만나는 축제이기도 했답니다. 여기서 눈이 맞은 남녀의 스토리 중 하나가 '삼국유사'에 나오는 '김현과 호랑이' 이야기예요. 신라 원성왕 때 김현이란 화랑이 흥륜사에서 탑을 빙빙 도는 '탑돌이'를 했는데, 문득 한 젊은 여인이 나타나 같이 탑을 돌았고 김현과 연인 관계가 됐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그 여인은 사람이 아니라 호랑이였는데, 스스로 죽음을 택했고 김현이 "호랑이를 잡아 백성을 살렸다"는 상을 받도록 해서 출셋길을 열어줬다고 합니다. 학자들은 그 여인이 정말 호랑이가 아니라 '호랑이처럼 무서운 도적이나 귀족 세력의 일원'이었다고 해석하고 있어요.
◇쌀 달라 조르는 '한국판 핼러윈'
통일신라에 이어 고려에서도 연등회를 중요한 국가 행사로 삼았어요. 태조 왕건의 유훈인 '훈요십조'에는 '연등회와 팔관회를 계속 이어가라'는 당부가 들어있죠. 그런데 6대 임금인 성종 때 유학자 최승로가 '시무 28조'를 올리면서 연등회의 폐해를 지적합니다. '연등과 팔관으로 백성을 많이 동원하고 노역이 심하니 이를 줄여 백성이 힘을 펴게 하라'고 주장하죠. 하도 큰 행사라서 예산과 인력 동원이 상당했던 모양이에요. 이 때문에 잠시 폐지되기도 했는데, 8대 왕인 현종 때 부활했다고 합니다. 현종 이후 '고려사'에 나타난 연등 행사 기록은 모두 104번이나 돼요.
궁중에서도 연등회가 열렸습니다. 고려 말 공민왕 때는 도성의 어린이들이 연등을 만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종이를 오려 대나무에 깃발을 만들어 달고 도성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쌀을 구했다고 해요. 공민왕도 두 번이나 어린이들에게 쌀을 하사했답니다. 이런 일을 '호기풍속'이라고 하는데, 서양에서 핼러윈(Halloween·10월 31일) 때 아이들이 집마다 돌아다니며 사탕이나 과자를 달라는 풍속과 비슷해요.
◇조선에서 현대로 이어진 전통
고려가 무너지고 유교 국가인 조선이 들어서면서 팔관회는 폐지됐고, 연등회 역시 규모가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었죠. 15세기 문신 성현이 쓴 '용재총화'에는 "예전에 번성하던 것과 같지는 않다"는 구절이 나와요. 열리기는 열렸다는 것이죠. 물과 육지에 사는 수많은 영(靈)을 공양하는 의식인 '수륙재'가 연등회를 계승했다고 보기도 합니다. 19세기 말의 '임하필기'에는 연등회 때 호기풍속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요. 아이들이 돌아다니며 쌀을 달라고 했던 풍속이 몇 백 년이 지났어도 없어지지 않았던 거죠.
연등회의 전통은 1955년 서울 조계사 주변에서 제등 행렬을 하면서 다시 이어졌어요. 1996년부터는 연등 행렬 규모가 커졌고, 여러 행사가 더해져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봄철 축제로 거듭났죠.
2012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돼 전통성을 인정받기도 했어요. 인도·스리랑카·태국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참여해 '한국이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국적·인종·종교의 장애를 뛰어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요즘엔 만화 캐릭터로 만든 연등도 볼 수 있어요.
유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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