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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책

[제이노엘] [수도 한양] 조선 왕조의 500년 도읍지

by 제이노엘 2017.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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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이노엘 입니다.



서울 서울 서울 아름다운 이거리~ 의 노래처럼


서울은 우리 나라 수도 입니다.


조선 시대 부터 바뀌어서 지금까지의 도읍지이자 수도인데 어떻게 변했나 봅시다.



지난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서울 시티 투어 버스를 타고 청계천 주변과 고궁을 여행했습니다.


광화문, 덕수궁, 창경궁, 창덕궁, 경복궁을 둘러 보았지요.


아빠에게 왜 이렇게 궁궐이 많은지 여쭈어 보았더니,


서울이 조선의 도읍지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런데 왜 조선은 ‘한양’을 도읍지로 정했을까요?



한양 천도 - 왜 한양으로 옮겼을까?


새로운 나라를 위한 새로운 도읍지가 필요


태조 이성계는 국왕의 자리에 오른 후 도읍지를 옮기자고 했습니다.


그 이유로 풍수지리설을 내세우며 개경의 땅 기운이 다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개경이 고려의 수도였기 때문이지요.


새롭게 출발하는 조선 왕조의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새 정치를 펴나갈 새로운 도읍지가 필요했던 겁니다.



그래서 이성계는 천도 후보지를 직접 답사할 만큼 수도를 옮기는 데 의욕을 보였습니다.


처음에 새 도읍지는 계룡산으로 정해졌어요.


그러나 계룡산 주변은 많은 사람이 살기에는 땅이 좁고 남쪽에 치우쳐


불편하다는 상소가 올라와 새 도읍지로 지금의 서울인 한양이 결정되었습니다.



한양은 한반도의 가운데에 있어 개경보다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와 같은 비옥한 남쪽 지역과 가까웠지요.


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적을 방어하기에도 좋았으며,


강이 흐르고 바다가 가까운 탓에 교통이 편리해서 새 국가의 수도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1394년 한양으로 도읍지를 옮겼습니다.




도읍 세우기 - 수도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풍수지리적으로 너무나 훌륭한 한양


한양 땅을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풍수지리적 요소가 무척 잘 어우러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한양을 병풍처럼 둘러싼 북악산, 남산, 낙산, 인왕산은


북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겨울바람을 막아 주고, 외적의 방어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산으로 둘러싸인 공간에는 드넓은 시가지가 펼쳐져 있고,


그 안쪽으로는 청계천이, 바깥쪽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있어 식수를 구하기도 쉬웠지요.


이것이 바로 한양이 조선의 도읍지 한성부가 된 이유야.



차근차근 모습을 갖춰가는 새로운 도읍지


한성부는 유교 사상에 따라 건설된 도시죠.


먼저 궁궐을 짓고, ‘만 년토록 큰 복을 누려 번성하라.’는 뜻을 따라 ‘경복궁’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중심으로 왼쪽(동쪽)과 오른쪽(서쪽)에 각각 종묘와 사직(단)을 두었어.



종묘는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는 사당으로, 해마다 왕실의 제사를 지냈습니다.


사직단은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드리는 곳입니다.



다음으로 지형을 따라 곡선으로 만들어진 도성(都城) 중간중간에 4대문과 4소문을 만들었는데,


한성부에서 사방팔방 이어지는 교통로와 만나는 중요 지점이지요.


4대문은 동·서·남·북대문을 말합니다.


동대문은 흥인지문, 서대문은 돈의문, 남대문은 숭례문, 북대문은 숙정문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각각 유교에서 중시하는 인, 의, 예, 지를 상징합니다.



또 경복궁 앞에서 남북으로 뻗은 거리에는 의정부, 6조의 건물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간 지금의 종로 거리에는 시장을 설치했습니다. 자, 이제 도성의 모습이 잘 갖추어졌지요?



마지막으로 도성 안에 사는 사람들은 어디에 살았을까요?


청계천 북쪽은 궁궐, 관청, 교육 기관과 가까워 주로 고위 관료들이 살았으며, 지금의 북촌에 해당합니다.


청계천 남쪽은 양인이나 노비층이, 청계천 좌우 일대에는 주로 시전 상인들이 살았지요.


그리고 조용하고 물을 구하기 쉬운 남산 밑에는 남촌이 형성되어 힘없는 선비들이 살았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양은 이후 500여 년 동안 조선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가 되었고,


현재까지도 우리나라의 수도이며, 지금은 서울이라고 부릅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숭례문 현판은 왜 세로로 걸려 있어요?


우리 조상들은 서울 남쪽에 있는 관악산을 불의 기운이 강한 곳이라고 생각해 도성에 화재의 위험이 많다고 여겼지요.


그래서 불의 기운을 낮추기 위해 궁궐 앞에 해태상을 세웠습니다.


해태는 정의를 수호하는 동물로, 이름의 ‘해’자가 바다 해(海)로 읽혀 불을 막는 동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대문인 숭례문(崇禮門)의 현판을 세로로 걸어서 화재를 예방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일종의 부적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2008년 2월 10일 숭례문에 불이 났지요. 5시간 만에 건물이 모두 불에 탔지요.


우리나라 국보 1호가 훼손된 정말 아쉬운 사건이입니다.


그 일을 계기로 우리 모두가 문화재 관리에 더 신경 써야 한다는 걸 느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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