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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당나라 배 100척 격파한 '수군 대장'… 연개소문 여동생이었죠

by 제이노엘 2020.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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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의 한국사] 당나라 배 100척 격파한 '수군 대장'… 연개소문 여동생이었죠

 

고구려 장군 연수영

최근 미국 디즈니사가 제작한 실사 영화 '뮬란'이 전 세계에서 선보였어요. 이 작품은 고대 중국에서 아버지를 대신해 남자 복장을 하고 전쟁터에 뛰어들어 활약한 용감한 여전사 화목란의 전설을 바탕으로 하는데요. 실존 인물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민간에 오래도록 구전돼온 전설적인 여성이랍니다. 우리 역사에도 화목란처럼 직접 전쟁터에 나가 싸우며 활약을 펼친 것으로 전해지는 용감한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적과 맞서 싸운 전설 속 여장군들

지금은 중국 땅인 지린성 옌볜 조선족 자치구와 헤이룽장성 일부 지역은 과거 우리 민족이 세운 국가인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습니다. 이 지역에 살던 발해 여인 홍라녀는 어려서 무예를 익힌 뒤 발해 왕을 위험으로부터 구한 전설적인 여전사로 전해져요. 공적을 세운 뒤 궁궐에서 살다 거란이 발해를 침략해 오자 군사를 이끌고 거란군과 맞서 용맹하게 싸웠다고 해요.

▲   /그림=김영석

 

전설 속 홍라녀의 모습은 하얀 짧은 저고리에 붉은색 치마를 입었는데 무예가 뛰어나 활을 잘 쏘고, 곁에는 눈같이 흰 천리마가 있었다고 합니다. 홍라녀가 홀로 거란에 들어가 납치당한 발해의 태자를 구한다는 전설도 전해져요. 홍라녀 전설은 서로 다른 버전이 13가지나 되는데, 926년 발해가 멸망한 뒤에도 홍라녀 전설이 계속 구전되어 왔답니다. 2005년에는 이 전설을 바탕으로 한 국내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죠.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전해진 전설이 아니라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 그 활약을 짐작해볼 수 있는 여전사도 있어요. 고구려 말기에 활약한 연수영이란 인물이에요.

◇연개소문의 여동생 연수영

"보장왕 1년(642년) 왕이 교서를 내려 연수영을 석성도사로 삼자, 연수영은 당나라 군대의 침입에 대비하여 5000명의 수군을 양성했으며, 70여 척의 전함을 건조하였다. 그녀는 연개소문의 누이동생으로, 문무에서 탁월한 능력과 비상한 통솔력으로 부하 장졸들의 신망을 받았다. 645년 마침내 당나라 군대가 고구려에 쳐들어와 전쟁이 일어나자 연수영은 그해 6월 당나라 군대의 해상기지인 창려로 진격하여 적선 100여 척을 불태우고, 곧이어 성산의 적군을 쳐서 무찌르니 죽은 당나라 군사가 2만에 이르렀다. 연수영은 이 전공으로 석성도사에서 수군 군주 겸 모달(장군급)로 승진했다."

이 기록은 고구려의 영토였던 석성, 비사성, 건안성, 오고성 등지에서 발견된 비석문 등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군사를 거느리고 전쟁터에 나가 적의 함대를 무찔렀고, 적군을 사살하는 전공을 올려 수군 최고 대장에 올랐다는 거예요. 고구려 여인 연수영의 활약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어요.

하지만 말년의 삶은 안타까웠던 것으로 보여요. 오고성의 비석문 등을 보면 둘째 오빠인 연정토의 모함으로 관직에서 쫓겨나 귀양을 갔다고 나와요. 이후 죽임을 당했거나 멀리 쫓겨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해요. 고구려 백성들은 연수영의 무죄를 믿었기에 이를 매우 안타깝게 여겼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연수영의 오빠인 연개소문이나 연정토에 대한 기록은 우리나라 '삼국사기'나 당나라 '구당서' 등 역사서에는 기록돼 있어요. 하지만 연수영에 대한 기록은 공식 역사서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비석이나 중국 야사 등의 자료로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죠. 그래서 일부 역사학자들은 그녀의 존재와 활약을 연구하고 있기도 해요.

◇조선 후기 유행한 여장군 소설

조선시대에는 전쟁터에서 활약한 실제 여장군을 찾을 수 없지만, '홍계월전' '정수정전' 등 여성이 남자 복장을 하고 무예를 닦아 과거에 급제한 뒤 전쟁터에 나가 큰 공을 세운다는 내용의 소설이 큰 인기를 끌었답니다. 대부분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인데 이를 '여장군 소설'이라 불러요.

남녀 차별이 심했던 조선시대에는 후기로 갈수록 숱한 외세의 침략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여성들이 다른 나라로 끌려가거나 가정에서 큰 희생을 하면서 살았어요. 그래서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이 꿈틀거렸고, 17~18세기엔 인간의 평등 사상을 내세운 천주교가 퍼지기도 했지요. 특히 고전소설의 주 독자층이 여성이었기 때문에 여성의 지위와 가치를 높이는 내용의 여장군 소설이 크게 인기를 끈 것으로 보여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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