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로 세상 읽기] 오키나와 류큐왕국의 왕궁 정문… 1945년 미군 폭격으로 불타 다시 지었죠
일본 2000엔 지폐의 슈레이 몬
일본은 2000년 오키나와에서 개최된 '주요 8국(G8) 정상회담'을 맞이하여 기념 지폐인 '2000엔권(약 2만2000원·사진)'을 발행했습니다. 일본 최초의 기념 지폐이지요. 2000엔권 지폐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오키나와의 슈리성(首里城) 정문 '슈레이 몬(守禮門)'이 그려져 있어요. 일본 영토이지만 그동안 소외돼왔던 오키나와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고, 서구에서 통용되는 '2자 단위' 화폐를 새로 선보이고자 한 것이었다고 해요.
슈레이 몬은 16세기 옛 류큐왕국 쇼세이왕 시절에 세운 것으로 추정돼요. 오늘날 슈레이 몬은 1945년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과 일본군이 벌인 오키나와 전투 때 폭격으로 소실된 것을 1958년 복원한 것이라고 해요. 중국 건축 양식에 많이 쓰이는 붉은색으로 칠한 2층 구조의 문으로 현판에는 '류큐는 예절을 중시하는 나라'라는 의미의 '수례지방(守禮之邦)'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답니다. 입구는 중앙문과 양옆 문 등 3개 문으로 이뤄져 있어요. 중앙문은 귀족이나 왕족만 드나들 수 있었고, 평민이나 신하들은 양 옆문을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슈레이 몬이 있는 슈리 성은 어떤 곳이었을까요? 이 성은 과거 해외 무역의 거점인 나하항을 내려다보는 언덕에 위치한 왕성이에요. 슈리는 류큐왕국의 수도로, 오키나와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성이죠.
오키나와 섬은 류큐제도 남부에 있는 화산섬으로 40여 개의 유인도와 수많은 무인도로 구성돼 있어요. 15세기 류큐왕국이 세워진 후 독자적인 왕조 국가를 이루다 1879년 일본 영토로 병합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이곳에서 태평양 최대 전투가 벌어졌고 미군이 1945년 6월 오키나와를 점령하면서 일본과 강화조약을 맺었답니다. 이에 따라 류큐제도는 미국의 지배를 받다가 1953년과 1972년 순차적으로 일본에 모두 반환됐어요.
2000엔권 화폐 뒷면에는 일본 여류 소설가 무라사키 시키부의 소설이자 국보인 '겐지모노가타리 에마키'의 한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헤이안 시대 소설가인 무라사키가 54편의 소설을 그림과 곁들여 54첩의 두루마리에 담았어요. 일본 천황 아들의 인생 이야기로 1000~1008년에 완성되었다고 해요. 화폐에 그려진 장면은 제38권 '스즈무시'의 한 장면으로 천황과 그의 아들인 주인공 히카루 겐지가 앉아 있는 모습이죠.
오늘날 일본에선 2000엔권 지폐를 흔히 볼 수 없어요. 발행 당시엔 한때 5000엔권보다 더 많은 양이 발행되기도 했지만 현금자동지급기나 자판기에서 이 화폐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 때문에 사용률이 점차 줄어들었어요. 이 때문에 정부에서 2000엔권의 사용량을 늘리기 위해 공무원에게 월급을 줄 때 일부 금액을 2000엔권으로 주기도 했지만, 결국 2010년부터 신권을 더 이상 발행하지 않고 이전까지 발행된 것만 유통되고 있답니다.
배원준·세계화폐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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