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에세이] "함부로 세금 거두지 않겠다"… 1215년 영국 존 왕이 서명한 '민주주의 뿌리'
마그나카르타(대헌장)
지난 2015년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는 '미국 헌법 800주년 기념 전시회'라는 큰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미국이 처음 독립을 선언하고 영국과 전쟁에 들어갔던 시기가 1776년이죠. 2015년은 미국이 독립선언한 지 239년 지난 해인데 어째서 '800주년'이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일까요? 비밀은 기념 전시회의 핵심 전시품이었던 방탄 유리 속 누렇게 바랜 서류 한 장,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에 담겨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800여 년 전인 13세기 초, 영국은 왕과 영주들로 구성된 봉건국가였습니다. 당시 영국을 다스리던 존 왕은 형인 리처드 3세가 십자군 원정을 떠나자 왕위를 물려받았어요. 하지만 형이 원정군을 꾸리면서 무리하게 병력을 빼갔기 때문에 영국 내 군사력은 크게 약화하였습니다. 바다 건너 유럽 대륙에 가지고 있던 영토인 노르망디 지역마저 프랑스에 빼앗기고 말았지요.
안 그래도 전쟁으로 인한 세금 부담에 시달리던 귀족들은 존 왕이 무기력하게 프랑스에 패배하는 모습을 보이자 왕에게 반기를 들고 대항하게 됩니다. 이미 세력이 크게 약화하였던 존 왕은 큰 저항도 못하고 금세 굴복했어요. 귀족들은 존 왕 대신 새 왕을 세우려 했지만 후보자로 염두에 뒀던 왕족이 사망하는 바람에 대체할 사람이 마땅치 않았죠. 그대로 물러설 수 없었던 귀족들은 전략을 바꾸어 존 왕에게 '앞으로 귀족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함부로 세금을 거두거나 억압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일종의 '각서'를 쓰도록 합니다. 이 각서의 이름이 바로 '큰'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마그나(Magna)'와 '서류, 헌장'이라는 의미의 '카르타(Carta)'를 합친 '마그나카르타'랍니다. 우리말로 '대헌장'이라고 번역하기도 하지요. 이 사건은 왕의 절대 권력과 횡포에 대한 제어를 문서로 보장한 첫 사건으로 평가받아요.
귀족과 평민의 신분 제도가 여전히 존재했던 영국보다 이런 생각을 더 적극적으로 수용한 곳은 신생 국가였던 미국이었어요. 그래서 미국은 민주국가, 법치국가로서 미국의 시발점이 1215년 마그나카르타에 존 왕이 서명하던 시점부터였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랍니다.
'법으로 왕의 권력을 제한해서 국민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마그나카르타의 아이디어는 오늘날 '국가 권력의 남용을 막아서 국민의 기본권을 지킨다'는 근대 헌법 정신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마그나카르타는 가장 오래된 헌법,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시작을 알린 이정표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곽한영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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