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로 세상 읽기] 야구에선 '투 아웃엔 3루 도루 시도하지 않기', 농구에선 '큰 점수차로 이길 땐 밀착수비 금지'
불문율
2020년 한국 프로야구의 공식 야구 규칙은 200장이 넘는 분량입니다. 이 수많은 규칙을 다 알고 이해하는 것은 오랫동안 야구를 한 프로야구 선수라도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이것도 부족했던지 야구에는 책엔 나와 있지 않지만 마땅히 따라야 할 규칙, 이른바 '불문율(unwritten rule)'이라는 것이 있어요.
얼마 전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올 시즌 가장 빼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던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샌디에이고 파드리스)라는 선수가 친 홈런이 화제로 떠올랐는데요. '큰 점수 차로 이기고 있을 때 3볼 0스트라이크(3-0) 상황에서는 풀스윙을 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어긴 것이 문제였어요. 불문율을 어긴 대가로 다음 타자에게 빈볼(투수가 타자 머리를 향해 의도적으로 던지는 공)을 던진 투수와 소속 팀 감독이 출장 정지 징계까지 받는 일까지 생겼답니다. 타티스 선수는 이날 만루 홈런을 치는 대단한 활약을 펼쳤지만 상대 팀에 사과까지 해야만 했어요.
야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스포츠에 불문율이 있어요. 이는 대체로 세 종류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미신이에요. 스포츠는 사실 운의 영향도 많이 받기 때문에 선수들이 불운을 가져올 수 있는 일은 어떻게든 피하고자 해요. 예를 들면 노히트(무안타 경기)나 퍼펙트 경기(선발투수가 무안타, 무실책 등으로 승리한 게임)가 진행 중일 땐 어느 누구도 노히트나 퍼펙트 경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겁니다. 또 공격과 수비 전환 때 파울 라인을 밟으면 재수가 없다고 해서 조심해서 넘어 다닌다고 하네요.
둘째 종류는 경기 전략에 대한 불문율이에요. 예컨대 야구에는 '투 아웃엔 3루 도루 시도를 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는데요. 투 아웃엔 타자가 어떻게 치든 관계없이 주자가 달리기 시작하는데, 안타가 나오면 2루에 있어도 득점할 확률이 3루에 있을 때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해요. 농구에선 '3점슛 하는 선수에게 파울하지 말라'는 불문율이 있었는데요. 예전엔 3점슛 확률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무리하게 막으려 하기보단 깨끗하게 막는 걸 시도해서 슛하기 어렵게 만드는 정도로 충분했기 때문이죠.
셋째는 상호 존중에 대한 불문율입니다. 축구에서 '상대 선수가 경기장에 쓰러져 있을 땐 볼을 일부러 바깥으로 차서 경기를 중단시킨다'는 불문율은 많은 팬에게 익숙하죠. 농구에선 '많은 점수 차로 이기고 있을 땐 올코트 프레스(밀착 수비의 한 종류) 수비를 하지 않는다'는 것도 불문율이에요. 야구에서 공격하는 팀 선수가 아웃되거나 공격이 끝나서 더그아웃(감독과 코치 등이 대기하는 장소)으로 돌아올 땐 상대팀 마운드(투수가 공을 던질 때 서는 곳)를 밟지 않는 것이 예의라는군요.
이런 불문율은 숫자도 많고 이해하기 어려운 데다가 같은 스포츠라도 나라마다 다르고 시대에 따라서도 변합니다. 얼마 전 미국 야구 팬들에게 화제가 되었던 KBO(한국 프로야구) 타자들의 화려한 방망이 던지기는 사실 미국 프로야구에선 하면 안 되는 매우 무례한 행동이죠. 타티스 선수도 과거와는 달리 "3볼 0스트라이크 불문율이 너무 고리타분하다"면서 많은 선수와 팬이 타티스 선수를 옹호했다고 해요.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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