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인문학] 조선시대 영·정조 이후 부녀자들이 짓던 가사 '규원가' '덴동어미화전가' 등 6000여편 있죠
내방가사
"딘동어매하고 동네 여자들하고 봄에 화전놀이를 가그덩. 가가 잘 노는데, 똑 내겉이 시집와가 이레 만에 천청상이 되뿐 색씨 하나가 한탄을 해 가매 우는 게라 …."
'경북대본 소백산대관록 화전가'에 실려 있는 내방가사 '덴동어미화전가'의 한 구절이에요. 이 대사를 표준어로 바꾸면 대략 이런 뜻이죠. "덴동어미하고 동네 여자들이 봄에 화전놀이를 가거든. 덴동어미가 참 잘 놀지. 그런데 꼭 나처럼 시집와서 일주일 만에 남편 잃고 과부가 된 색시 하나가 한탄을 하며 우는 거야. "
내방가사(內房歌辭)는 조선 말기 영남 지방을 중심으로 부녀자 사이에 유행한 가사를 부르는 말이에요. 약 6000여편이 전해지는데 규방가사(閨房歌辭) 또는 규중가도(閨中歌道)라고도 하죠.
조선 시대 가사 문학은 사대부 남성들의 몫이었어요. 가사는 우리 고유의 민요적 율격인 3음보에 향가나 고려가요, 한시 등의 내용을 더한 것이었는데 이것이 발전하면서 4음보 율격으로 완성됐죠. 임진왜란 이후 영·정조 때부터 민간에 널리 유행하면서 부녀자들에게까지 퍼졌답니다.
부녀자들이 내방가사를 짓게 된 배경에는 훈민정음의 보급이 큰 역할을 했어요. 한문으로 만들어진 가사문학이 학자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면, 훈민정음 덕택에 여성의 섬세한 감성과 풍부한 예술성을 살린 내방가사가 등장하게 됐지요. 당시 남존여비 봉건사회에서 여성이 주로 하는 일이라곤 규중(부녀자가 거처하는 곳)에 들어앉아 부엌일, 바느질, 제사 지내기, 손님 접대 등 집안일이 전부였어요. 한문을 배우는 교육이나 예술 창작 활동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다가 한글을 배우게 됐는데, 이를 통해 여성 문학인 내방가사가 발전했답니다.
내방가사는 여성 특유의 감성이 묻어나는 작품부터 조선 시대 봉건사회 여성의 슬픔과 원한, 남녀의 애정, 고된 시집살이의 고통 등이 담긴 작품들이 주로 전해져요. 출가하는 딸에게 예절과 행동거지를 가르친 '계녀가(誡女歌)', 출가한 딸이 부모와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친가(思親歌)', 형제와의 이별을 슬퍼한 '형제이별가' 등이 있어요. 이렇듯 부녀자들이 이름 없이 지은 작품들이 많아서 대부분 작품의 작자나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답니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이르러 전통적인 가사와 민요 사이에서 독특한 분파를 이룬 작품으로 문학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요. 특히 선조 때 여성 시인 허난설헌이 지었다는 '규원가(閨怨歌)'는 유교 사회에서 여인의 한과 서러움을 담은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혀요.
'덴동어미화전가'는 경북 영주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가사인데, 네 번이나 결혼해서 네 번 모두 남편을 잃은 기구한 팔자의 덴동어미가 나서서 파란만장한 자신의 인생사를 펼쳐놔요. 그러고는 인생은 주어진 운명대로 사는 법이라고 다독이며 이야기를 끝맺어요.
극작가 배삼식의 희곡 '화전가'는 이 내방가사를 현대 무대로 옮긴 작품인데요. 6·25 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4월 어느 화창한 봄날을 배경으로 해요. 아들 잃은 어머니로서, 남편 잃은 아내로서, 남동생 잃은 누나로서 여인들이 견뎌내야 했던 삶이 펼쳐집니다.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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