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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선생님

[법학 에세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원칙 담은 282개 조항… 귀족 횡포 막고 노예 보호해주었대요

by 제이노엘 2020.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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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 에세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원칙 담은 282개 조항… 귀족 횡포 막고 노예 보호해주었대요

 

함무라비 법전

▲   /위키피디아

법을 분류하는 여러 기준 가운데 하나는 법의 원천이 어디인가, 즉 법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법원(法源)'이라고 부르는데요. 재판하는 기관을 의미하는 '법원(法院)'과 발음은 같지만 완전히 다른 의미예요.

먼저 법이 문서 형태로 만들어져 존재하는 경우 '성문법'이라고 부르고, 그렇지 않은 경우 '불문법'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웃어른을 공경해야 한다는 경로 사상은 법으로 정해져 있지 않지만 사람들 대부분이 받아들이고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고 느낀다는 점에서 불문법의 일종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도로교통법은 내용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고 문서화되어 있는 성문법의 일종이지요.

불문법은 만들어지는 절차가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고, 사람에 따라 해석을 달리할 가능성이 있어요. 다만 그 내용이 여러 사람에게 반복적으로 수용되면서 규범으로 자리 잡은 것이죠. 반면 성문법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절차에 따라 그 내용을 분명하게 확정하여 제시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확정된 내용'이라는 특성은 성문법의 큰 힘으로 작용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문법은 기원전 1700년대에 만들어진 함무라비 법전입니다. 고대 바빌로니아 제1 왕조의 제6대 왕인 함무라비왕(재위 기원전 1792~기원전 1750)이 만든 이 법전은 2.25m 높이의 돌기둥〈사진〉에 새겨진 형태로 발견됐습니다. 이 때문에 282조항이 오늘날까지도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었어요. 함무라비 법전이 유명한 또 다른 이유는 그 내용인데요. 살인을 저지른 자는 사형에 처하고, 타인의 팔을 부러뜨린 자는 자기 팔도 부러뜨려야 한다는 이른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원칙, 즉 '탈리오의 법칙'을 담고 있었거든요. 게다가 당시는 신분제 사회였기 때문에 평민이나 노예, 혹은 여성들은 피해를 보거나 가해를 하더라도 차별적 보상을 받거나 보복을 할 수 있도록 했답니다. 예컨대 함무라비 법전 198조는 귀족이 평민의 뼈를 부러뜨렸으면 귀족 뼈를 부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은 1미나만 치르도록 했고, 205조는 노예가 귀족 뺨을 때릴 경우 노예도 뺨을 맞는 것이 아니라 노예의 귀를 자르도록 했죠.

오늘날 시선으로 보면 무조건 똑같이 복수하도록 하는 것도 야만스러워보이는데, 그마저도 귀족 편만 들어주는 정말 잘못된 법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신분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했던 약 3700년 전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어땠을까요? 오히려 많은 귀족이 평민을 좀 때렸다고 왜 돈을 줘야 하는지, 반대로 감히 노예가 귀족 뺨을 때렸는데 귀만 자르고 살려둔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불만을 가졌을 거예요. 언뜻 보기에는 불평등한 것처럼 보이는 함무라비 법전은 당시 귀족들의 과도한 횡포와 권력 남용을 제한하고 낮은 계층의 사람들을 보호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함무라비 법전이 돌기둥 형태로 남겨진 것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함부로 바꾸지 못하는 '고정된 법'이라는 이미지를 전할 수 있었고, 기둥으로 만들어서 사람이 많은 곳에 세워놓아 누구나 그 내용을 보고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법은 권력 행사를 돕기도 하지만 반대로 지나친 권력을 제한하는 근거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민주주의가 '법치'를 근간으로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곽한영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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