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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선생님

[이주은의 세계의 박물관] 영국 빛낸 인물 총망라… 예술성보다 인지도가 더 중요하대요

by 제이노엘 2020.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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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의 세계의 박물관] 영국 빛낸 인물 총망라… 예술성보다 인지도가 더 중요하대요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

영국 런던 트래펄가 광장의 정면에는 국립미술관이 있고, 그 뒤쪽으로 국립초상화미술관이 있습니다. 국립미술관은 세계 각국의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지만, 국립초상화미술관은 오직 영국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영국 사극 속에 자주 등장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헨리 8세나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를 볼 수도 있고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 영화감독 앨프리드 히치콕의 초상 사진에 이르기까지 영국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을 작품으로 볼 수 있답니다.

◇초상화만 모아놓은 미술관

1846년 필립 스탠호프라는 귀족은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의 초상화가 전쟁 장면을 상상해서 그린 그림들 속에 뒤섞여 있으니, 누가 실물인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국회에 초상화만을 따로 모아 미술관을 짓자는 안건을 올렸어요. 1856년 그 안건이 통과돼 초상화미술관이 탄생했습니다.

▲   ①엘리자베스 1세 초상화. ②브론테 자매의 초상화. ③국립초상화미술관. /국립초상화미술관·위키피디아

 

이 미술관의 특징은 화가의 명성이나 작품성보다는 그림 속 모델의 명성을 위주로 작품을 선별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모델이 어떤 차원에서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작품을 수집할 때 세 가지 사항을 준수해야 합니다. 먼저 인물의 종교적, 정치적, 예술적 성향을 따지지 않아요. 둘째, 살아있는 인물이나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인물은 제외하죠. 마지막으로 위원회의 동의 없이 초상화를 기증받지 않는다고 해요. 1969년부터는 예외적으로 살아있는 인물을 걸기도 한대요.

◇통치자 이미지를 담은 초상화

사진도 없고 TV도 없던 시절에 군주의 초상화는 시민들이 통치자의 이미지를 파악할 수 있었던 유일한 수단이었어요. 그래서 역대 왕들은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초상화에 모두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사진1〉의 주인공은 역사적으로 기억할 만한 뛰어난 지도자로 평가되는 16세기 군주, 엘리자베스 1세입니다. 아버지의 잦은 재혼으로 엘리자베스는 왕실에서 매우 불안정한 위치였어요. 언니를 옹호하는 사람들에 의해 런던 탑에 갇혀 지내기까지 했던 그녀는 이 세상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보고 들었어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습니다. 오직 자신만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고 확신했기에 평생 가족도 친구도 만들지 않고 고독하게 왕좌를 지켰답니다.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를 보면 입가나 눈가에 미소를 띠지 않고, 감정의 변화를 전혀 알 수 없이 가면처럼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죠. 옷도 가슴 앞이 파인 여성용 드레스가 아니라 남성 예복처럼 단추와 옷깃으로 장식한 옷을 입었습니다. 부드럽고 자애로운 느낌이 드는 이미지는 분명 아니지요. 누가 다가올까 두려운 듯 방어적인 표정과 자세를 취하는 듯 보이기도 해요.

◇영국 최고 작가 자매의 초상화

〈사진2〉는 브론테 자매의 모습이에요.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로 해마다 3순위 안에 드는 '폭풍의 언덕'의 소설가 에밀리 브론테의 소녀 시절 모습을 볼 수 있는 귀한 자료랍니다. 그림에서 에밀리는 가운데에 있고, 오른쪽에는 '제인 에어'를 쓴 샬럿 브론테, 왼쪽에는 막내 앤이 있어요. 모두 10대 소녀일 때였지요. 셋 모두 문학적인 재능이 있어 공동으로 시집을 내기도 했는데, 아쉽게도 전부 짧은 생애를 살았어요. 앤은 29세에, 에밀리는 30세에 죽었습니다. 큰언니 샬럿만이 결혼도 했지만, 그녀 역시 39세까지밖에 못 살았어요. 그림을 그린 사람은 남동생 패트릭인데, 에밀리와 샬럿 사이에 자신을 함께 그렸다가 지워버린 흔적이 흐릿하게 남아있어요.

1833년에 그려진 이 그림은 방치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샬럿이 죽은 후 샬럿의 남편이 재혼한 집에 아무렇게나 처박혀 있었다고 해요. 수십 년 동안 먼지가 쌓여 있다가 버려질 뻔했는데, 다행히 그의 조카가 그림을 알아보고 국립초상화미술관에 연락을 했습니다.

역사적인 인물을 그림으로 만나는 것은 색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사람의 인생은 시간이 흐르고 전혀 다른 관점에서 평가받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텍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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