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로 세상 읽기] 880만원짜리 지폐… 뇌물, 재산도피 없다는 자부심 담겼죠
싱가포르 1만달러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지폐가 뭔지 아세요? 싱가포르의 '1만달러' 지폐입니다. 1만 싱가포르달러는 우리 돈으로 약 880만원이나 됩니다. 그다음은 1000스위스프랑(약 130만원), EU 국가들이 쓰는 500유로(약 70만원)예요. 이런 엄청난 지폐가 발행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싱가포르는 서울보다 조금 큰 면적(722.5㎢)으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사이에 있는 섬이에요. 1819년 영국 식민지가 됐다가 1959년 영연방 자치령이 됐고 이후 1963년 '말레이시아 연방'을 결성했죠. 하지만 인종·문화적 갈등을 겪다가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일방적인 탈퇴 통보를 받고 예기치 않게 분리 독립을 하게 됐어요.
작은 국토에 중국계·말레이계·인도계 등 여러 민족이 함께 살고 있던 싱가포르는 독립 때 부존자원이 풍부하지 않고 부정부패도 만연했답니다. 당시 싱가포르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응급치료를 받고자 할 때조차도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부패가 심각했다고 해요. 따라서 싱가포르 정부는 국가 재건을 위해 부정부패 척결을 최우선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총리 리콴유(1923~2015)는 부정부패 척결에 국가의 사활을 걸었어요. 부패 행위 조사국을 만들어 부정을 저지른 공무원들은 자신이 아끼는 측근이었다고 해도 가차 없이 처벌했다고 해요. 공무원이 부정을 저지르면 그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도 처벌받았죠.
◇세계서 가장 비싼 돈, 1만 싱가포르달러
성공적으로 부패 척결을 이뤄낸 싱가포르는 1973년 '1만 싱가포르달러' 화폐를 만들었답니다. 보통 초고액권은 뇌물이나 재산 은닉 등 범죄에 악용될 수 있기 때문에 잘 발행되지 않는데요. 싱가포르는 부정부패가 심했던 나라가 투명한 나라가 되었다고 대외적으로 알리고 이 같은 자부심을 표현하고자 초고액권을 발행했답니다.
1만달러 지폐는 2014년까지 시장에 유통됐는데요. 역설적이게도 주변 다른 나라에서 이 고액권을 뇌물로 사용하자 싱가포르 정부에 1만달러 폐지를 요구했고, 결국 싱가포르 통화청은 2014년 7월 1만 싱가포르달러를 더 이상 발행하지 않기로 했어요. 다만 법정통화로서 효력을 상실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직 시중엔 이 지폐가 유통되고 있다고 해요.
그렇다면 이 화폐에는 누가 그려져 있을까요? 유솝 빈 이스학 전 싱가포르 초대 대통령입니다. 싱가포르는 의원내각제 국가라 실권은 총리가 쥐고 대통령은 상징적인 통치자 역할을 하는데요. 1910년 말레이시아 페락주에서 태어난 이스학 전 대통령은 싱가포르 주지사를 지내다 1965년 싱가포르가 분리 독립한 이후부터 1970년 사망할 때까지 대통령을 지냈죠. 리콴유 총리가 그에게 초대 대통령이 되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해요.
◇화폐에 그려진 싱가포르의 상징
싱가포르 화폐는 여러 나라 언어로 표시하고 있어요. 화폐 앞면을 보면 네 언어로 '싱가포르'가 쓰여 있는데요. 말레이어로 Sin gapura, 중국어로 新加坡라고 쓰여 있고, 타밀어(인도어의 일종), 영어로도 표기돼 있죠. 또 화폐 왼쪽엔 사자가 그려져 있고 오른쪽엔 호랑이가 그려져 있답니다. 사자는 싱가포르를, 호랑이는 말레이시아를 상징하는 동물이에요. 그 아래엔 "싱가포르여 전진하라"는 문구가 말레이어로 쓰여 있습니다.
또 몸은 물고기이고 머리는 사자인 상상의 동물 머라이언(Merlion)이 그려져 있어요. 이는 싱가포르 국명에 사자의 도시라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랍니다. 싱가포르란 이름은 13세기 스리위자야 왕국의 뜨리부아나 왕자가 현재 싱가포르 지역에 표류했을 때 사자를 목격하고 싱가뿌라(Singapura·산스크리트어로 사자의 도시)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 거예요.
[사과박스 가득 채우면 2200억원]
사과 15㎏ 박스에 우리나라 1만원권을 가득 넣으면 총 4만장(4억원)을 넣을 수 있는데요. 똑같은 사과박스에 싱가포르 1만달러를 넣을 경우 무려 2200억원이 된다고 해요.
배원준 세계화폐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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