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건축이야기] 르네상스·바로크 뒤섞은 日 '근세부흥식' 건축… 1926년 완공 당시 동양서 가장 거대했대요
조선총독부 청사
올해는 일제에 주권을 빼앗긴 '경술국치'가 일어난 지 110년이 되는 해죠. 1945년까지 한반도를 식민 통치하고 수탈했던 기관인 '조선총독부' 청사<사진>는 역사의 아픔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이었습니다. 1996년 해체가 끝나면서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1926년 완공된 이래 약 70년간 한국 근현대사의 중심에 있었어요.
1910년 한반도를 식민 통치하기 시작한 조선총독부는 남산에 있는 조선통감부 건물을 청사로 사용했어요. 하지만 사무 공간이 비좁다는 이유로 신청사 건립을 계획합니다. 오늘날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옛 서울대 문리대)과 서울도서관(옛 서울시청) 등이 후보지로 꼽혔는데, 최종 부지는 경복궁 경내로 낙점됐지요. 조선 왕조의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과 임금이 정사를 논하는 근정전 정문인 근정문 사이에 있는 흥례문을 부수고 거대한 청사를 짓겠다는 것이었어요.
원래 조선총독부 건물은 1912년 독일 건축가 게오르게 데 라란데가 설계를 맡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급사하는 바람에 일찍이 대만 총독부 건립 경험이 있던 일본 건축가 노무라 이치로가 설계를 마무리했습니다. 1926년 착공해 완공까지 10년이나 걸렸는데, 일제가 상당한 공을 들였지요. 한반도 식민 통치가 오래 계속될 것이라 생각했던 거예요.
지하 1층, 지상 4층 높이로 전면 너비만 131m에 달하는 이 신청사는 철근 콘크리트로 골조를 세웠지요.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근세부흥식'으로 지어졌어요. 유럽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을 모방해 서로 뒤섞은 뒤 이를 일본 스타일로 소화한 건축 양식이죠. 내부에 거대한 안뜰 두 개를 배치한 대칭 구조는 과거 유럽에서 궁전이나 관공서 등 권위 있는 건물에 자주 쓰는 형태였지요. 건축 면적 약 7000㎡, 연면적 약 3만1750㎡로 당시 동양에서 가장 거대한 서양식 건물이었어요. 내부는 사치스러울 정도로 화려해서, 한반도 전역에서 채취한 다채로운 대리석으로 바닥과 벽, 기둥을 마감했고 유럽에서 공수한 거대한 청동 조명과 샹들리에, 황금빛 커튼으로 내부를 장식했습니다.
1945년 광복 이후 이곳은 미군정 청사가 되었어요. 이후 이곳에서 헌법 제정을 위한 제헌국회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식이 거행됐죠. 1970년 정부서울청사 완공, 1982년 정부과천청사 완공 때까지 정부 청사 역할도 맡았답니다. 개·보수를 거쳐 1986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변신했죠.
김영삼 정부는 1993년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를 발표했습니다. 당시에도 '일제 잔재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과 '치욕의 역사도 보존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맞붙었지만 여론이 철거 쪽으로 기울었어요. 그리고 1995년 8월 15일 커다란 기중기가 건물 중앙 돔 꼭대기의 첨탑을 들어 올리며 이 건물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현재 해체된 첨탑과 일부 잔해는 독립기념관 야외 공원에서 볼 수 있어요. 다만 5m 아래 땅에 놓아서 위에서 내려다보도록 했고, 해가 지는 서쪽에 배치해 일제의 패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종현·디자인 건축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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