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에세이] "왕도 법 아래에 있다" 제임스 1세에게 패소 판결… 영국 '법치주의' 확립했대요
에드워드 쿡 판사
오늘날 영국 최초의 헌법적 성격을 갖는 문서로 여겨지는 건 1215년 영국 존 왕이 서명한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지만, 이 문서의 효력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런 영국에서 법의 지배, 즉 '법치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판사이자 정치인이었던 에드워드 쿡(Coke·1552~1634·사진)입니다.
쿡이 태어난 16세기 영국은 상공업 발전을 바탕으로 중산층이 크게 성장하면서 시민의 정치적 권리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쿡 자신도 상인 가문 출신이었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신념이 강했습니다.
쿡은 명문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하고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때 법무장관까지 오릅니다. 그는 여왕이 자녀 없이 사망하자 그 후계자로 조카인 제임스 1세를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어요. 하지만 정작 왕이 된 제임스 1세는 "왕의 권한은 신에게서 받은 것"이라는 '왕권신수설'을 내세우며 더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려고 했습니다.
특히 왕은 자신이 직접 임명한 사람들로 구성된 특설고등법원(Court of High Commission)을 통해 마음대로 재판을 하려고 했어요. 그러자 쿡이 보통 법원 법관들을 대표해 맞서 싸우게 됐어요. 1608년엔 마침내 왕 앞에 재판관들이 모두 소환됐습니다.
제임스 1세가 "판사는 왕의 대리자일 뿐이니 왕이 신하들을 통해 직접 판결을 내릴 수 있지 않은가?"라고 말하자 쿡은 "판결은 왕이 할 수 없는 것이고 오로지 법과 영국의 관습에 따라 법원에서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되받아쳤습니다. 화가 난 왕이 "법이 왕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왕이 법을 보호하는 것이다"라고 외쳤죠. 그러자 쿡은 이렇게 답합니다. "군주는 만인의 위에 있지만, 동시에 법 아래에 있습니다."
왕의 면전에서, 수많은 판사와 신하들이 도열해 있는 가운데 이런 말을 하다니 정말 당시로선 목숨을 건 용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왕은 크게 화를 내며 쿡을 당장 감옥에 집어넣으라고 했지만 주변 신하들이 간신히 뜯어말렸다고 합니다.
1616년 쿡은 왕의 부당한 권력 행사에 대해 시골의 한 성직자가 낸 소송을 맡아 결국 왕이 잘못했다는 전대미문의 판결을 내렸어요. 분노한 왕 제임스 1세는 또 법관들을 소집해 판결문을 박박 찢으며 판결을 취소하라고 명령했죠. 겁이 난 다른 법관들은 무릎을 꿇고 왕에게 용서를 빌었답니다. 하지만 쿡은 홀로 버티고 서서 "법관으로서 의무를 다한 것뿐"이라고 말했다고 해요.
결국 왕은 쿡을 법관직에서 쫓아내버리고, 그의 명예를 떨어뜨리기 위해 그가 판사로 지내는 동안 거액의 돈을 횡령했다는 누명을 씌웠습니다. 하지만 이 일로 제임스 1세는 왕이 정의를 무너뜨렸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고, 쿡에 대한 국민 지지는 더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곽한영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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