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문 선생님

[법학에세이] "한 사람이 죽더라도 남은 사람이 수사를 계속하자"… 마피아에 맞서 싸우다 숨진 두 판사

by 제이노엘 2020. 11. 26.
728x90
반응형

[법학에세이] "한 사람이 죽더라도 남은 사람이 수사를 계속하자"… 마피아에 맞서 싸우다 숨진 두 판사

 

팔코네와 보르셀리노

지난달 23일 이탈리아 나폴리 시내에서 코로나 확산을 막으려는 야간 통행금지와 영업 제한 조치에 반대하는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어요. 당시 스쿠터 200여 대에 탄 남성들이 경찰을 공격했는데, 이들은 시위가 폭력적으로 전개되도록 마피아가 동원한 사람들로 밝혀졌습니다. 로마, 밀라노, 토리노 등에서의 폭력 시위도 마피아가 배후에서 시위를 확산시킨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요.

마피아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범죄 조직이에요. 마약 판매, 건설, 금융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면서 이탈리아 정계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해요. 한때 마피아의 매출이 이탈리아 국내총생산(GDP)의 7%에 달했다고 합니다.

▲   조반니 팔코네(왼쪽)와 파올로 보르셀리노 모습. 위키피디아

 

이렇게 막강한 마피아에 대항한 젊은 법조인들이 있었습니다. 조반니 팔코네 판사는 1939년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에 있는 팔레르모라는 도시에서 태어났어요. 시칠리아는 마피아의 본거지나 마찬가지인 곳이에요. 1980년 치안검사였던 팔코네는 판사인 친구 파올로 보르셀리노와 마피아 자금을 추적하는 수사를 시작해요. 두 사람은 한 사람이 죽더라도 남은 사람이 수사를 계속하기로 약속했어요.

팔코네는 수사 끝에 1986년 대규모 마피아 재판을 여는 데 성공해요. '대재판'(Maxi Trial)이라고 불러요. 마피아의 공격에 대비해 대전차 로켓 공격에도 버틸 수 있는 철근 콘크리트 벙커에서 재판을 진행했어요.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헌병대가 건물을 둘러싸고 지켰어요. 피고인과 판사 약 500명은 재판이 진행되는 2년간 건물 안에서 숙식을 해결했답니다. 이 재판에서 마피아 360명에게 총 2665년의 징역형이 선고됐죠.

하지만 마피아에 매수된 부패한 정치인들이 팔코네를 쫓아내 버려요.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마피아들도 모두 풀려났죠. 팔코네는 로마 중앙정부 판사로 자리를 옮겼지만 마피아 수사를 포기하지 않았어요. 수사가 계속되자 마피아는 1992년 팔코네가 집으로 오는 길에 있는 고속도로에 폭탄 400㎏을 묻어 도로 전체를 폭파해버립니다. 이 폭발로 팔코네와 아내가 목숨을 잃었어요. 그리고 보르셀리노 판사도 57일 후 자동차 폭발 테러로 살해됐어요.

마피아를 두려워하던 이탈리아 시민들은 정의와 법을 지키려고 마피아에 맞선 법조인들이 사망한 것을 보고 달라졌어요. '아디오피초'라는 마피아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운동이 시작됐죠. 아디오피초는 작별을 뜻하는 '아디오'와 마피아에 바치던 상납금인 '피초'를 합한 단어예요. 상인들은 마피아에 바치던 상납금을 거부했고, 마피아의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와 노동자들의 파업이 일어났습니다.

공직 사회에서는 '마니 풀리테'(Mani Pulite·깨끗한 손) 캠페인이 시작됐어요. 마피아의 돈을 받은 부패한 공무원들에 대한 사법 당국의 대대적인 수사가 이뤄지고 약 6000명이 수사를 받아 2993명이 체포됐습니다.

시칠리아의 팔레르모 공항은 두 판사의 이름을 따 팔코네-보르셀리노 공항으로 이름을 바꿨어요. 마피아에 맞선 용감한 판사들의 고귀한 희생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이탈리아인들의 의지랍니다.


곽한영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