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에세이] 1688년 영국 의회가 국왕 제임스 2세 축출… 유혈 사태 없이 이뤄냈죠
명예혁명
오늘날 영국은 왕실이 존재하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근대 민주주의의 근간을 만든 나라로 평가받습니다. 영국을 근대 의회민주주의의 산실로 만든 결정적 계기는 17세기 명예혁명과 권리장전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영국 국왕은 찰스 1세였습니다. 그는 과중한 세금과 의회가 만든 법을 무시하는 정책을 일방적으로 펼쳐나갔습니다. 1628년 영국이 에스파냐와 전쟁을 벌이게 되자 돈이 부족해진 찰스1세는 의회를 소집해서 전쟁 자금을 걷으려 했어요. 의회는 이참에 왕을 압박하기 위해 "세금을 더 걷으려거든 왕권을 제한하는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맞섰어요. 의회에 굴복하고 싶지 않았던 찰스 1세는 이를 거부했지요.
그러자 영국 의회는 400여 년 전인 1215년 존 왕이 서명한 '마그나카르타(대헌장)'를 들며 "존 왕이 자신의 권력을 제한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뒤를 이은 왕들이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 이제라도 약속을 지켜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하는 탄원서(Petition) 형식의 글을 왕에게 올렸습니다. 이 문서를 '권리청원(Petition of Rights)'이라고 해요.
찰스 1세는 급한 마음에 일단 권리청원을 받아들였지만, 전쟁 자금을 확보하자 바로 다음 해인 1629년 의회를 해산시키고 이후 11년간 아예 의회를 소집하지 않았답니다. 왕에 대한 민심이 나빠진 가운데 영국에서 '청교도 혁명(1642~1660)'이 발발했습니다. 청교도가 중심이 되어 일으킨 세계 최초의 시민혁명으로 귀족 출신 정치가였던 올리버 크롬웰이 이끌었어요. 절대 왕권을 휘두르던 찰스 1세는 결국 왕위에서 쫓겨나 처형되었습니다.
이후 혼란기를 거쳐 1685년 영국은 다시 왕정 체제로 돌아왔어요. 왕위에 오른 제임스 2세는 찰스 1세의 아들이었는데 그 역시 아버지처럼 권력을 마구 휘두르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의회는 더 이상 참지 않고 군대를 일으켜 왕에 맞섰어요. 시민들 대부분이 의회 편에 섰기 때문에 제임스 2세는 제대로 한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1688년 프랑스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피를 흘리지 않고 성공한 혁명이라는 뜻에서 이 사건을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이라 불러요.
승리한 영국 의회는 직접 새로운 왕인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를 '공동 왕'으로 추대하고, 왕권을 제한하고 국민의 권리를 정리해놓은 권리 목록(bill)을 왕에게 들이밀었습니다. 1689년 공포된 이 법의 공식 명칭은 '신민의 권리와 자유를 선언하고 왕위 계승을 정하는 법률'이지만 시민의 권리 목록을 담고 있는 법률이라는 의미로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라 불러요.
곽한영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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