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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선생님

[법학 에세이] 빵 한 조각 훔친 혐의로 19년 옥살이… 네 번의 탈옥으로 가중 처벌 받은 거였죠

by 제이노엘 2020.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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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 에세이] 빵 한 조각 훔친 혐의로 19년 옥살이… 네 번의 탈옥으로 가중 처벌 받은 거였죠

 

장발장과 법치

우리는 흔히 '법치(法治)'가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배워요. 그런데 법치는 언제나 반드시 좋은 것일까요?

법치는 '법으로 통치한다'는 뜻이고, 그 반대말은 법 대신 사람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통치하는 '인치(人治)'입니다. 옛날에는 왕이나 귀족같이 소수의 사람들이 통치를 담당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무조건 여기에 따라야 했어요. 하지만 인간의 마음을 완전히 배제한 법이 항상 바람직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   영화 '레미제라블'의 장발장 모습. /유니버설픽처스

 

프랑스 소설가 빅토르 위고가 1862년 발표한 장편소설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주인공 '장발장'의 경우를 생각해볼게요. 우리에게 장발장은 고작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무려 19년 동안이나 옥살이를 한 인물로 알려져 있어요. 하지만 소설을 잘 읽어보면 장발장이 19년간 옥살이를 한 것은 '법치'의 차원에서 타당한 것이었습니다.

빵 가게의 유리창을 깨고 빵을 훔쳐 간 것은 빵을 훔친 절도죄 외에도 유리창을 깬 기물 파손죄, 그 사이로 손을 넣어 집 안으로 침입했으니 무단 침입죄, 게다가 그 가게가 빵 가게 주인의 살림집이기도 했으니 가택 침입죄가 성립하거든요. 게다가 장발장은 마침 사냥을 다녀오던 길이라서 총도 소지하고 있었어요. 이 때문에 단순한 절도가 아니라 강도죄가 되고 이런 행동들이 야간에 이루어졌으니 가중 처벌 대상이 됐죠. 그래서 첫 재판에서 선고받은 벌은 '5년 형'이었는데, 장발장이 형 집행 중 4번이나 탈옥을 시도했기 때문에 거듭 처벌을 받아서 총 19년이나 수감 생활을 한 것이었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이 장발장의 처지를 가련하게 여기는 건 그가 처한 환경 때문이었어요. 장발장이 빵을 훔친 이유는 굶어 죽기 직전이었던 누나와 어린 조카들 일곱 명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였어요.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아로 자란 장발장은 그를 키워 준 누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자신은 굶주림에 시달리면서도 뼈가 빠지도록 농장 일을 했죠. 하지만 겨울이 되어 일자리가 없어지자 사냥이라도 해서 짐승을 잡아오려 했는데 이마저도 실패해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던 길이었어요. 집에서 배가 고파 울고 있을 어린 조카들의 얼굴이 떠오르자 차마 그대로 돌아갈 수 없었던 장발장은 진열장에 놓인 빵을 보고 충동적으로 빵을 훔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기계적으로 법을 적용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고민하게 돼요. 실제 '레미제라블' 속 장발장을 올바른 길로 이끈 것은 19년간의 수감 생활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은식기를 훔친 그를 너그럽게 감싸준 미리엘 신부님의 믿음이기도 했죠.

사실 법의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선한 행동을 하도록 만들고,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에요. 즉, 법치는 인치를 완전히 몰아내야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존재하며 서로를 보완해줄 때 더 건강해질 수 있는 거죠. 지난 2015년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상습절도죄를 가중 처벌하도록 한 현행법이 다른 형법에 비해 지나치게 균형을 잃었다면서 위헌 결정을 내리기도 했답니다.


곽한영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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