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으로 세상읽기] 2400년 전 페르시아의 '안전통행증'서 유래… 세계 195국 중 193국의 여권 크기가 같아요
여권의 발전
기록에 따르면 역사상 최초의 여권은 기원전 45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대 페르시아 왕이 자신의 신하 느헤미야를 예루살렘 지역 총독으로 임명하면서 그가 임지까지 무사히 이동하도록 유프라테스강 서쪽 총독들에게 협조를 요청했던 서신이 최초의 여권이에요.
이와 같은 '안전통행증'처럼 여겨졌던 여권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여권으로 자리 잡은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입니다. 1920년 프랑스 파리에서는 역사상 최초의 여권 회의가 열렸죠. 국제연맹(유엔의 전신)이 주도했던 이 회의에서 참가국들은 여권의 표준을 정하기로 했는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어요. '여권을 15.5×10.5㎝ 크기의 32페이지짜리 수첩 형태로 하고 겉표지에는 국가 이름과 국가 문장을 표시한다' '속지는 인물 정보 페이지와 비자 페이지로 구분한다' '글자는 2국 이상의 언어로 표기한다' 등이었죠. 그리고 외국인이 공식적인 비자를 갖고 있으면 국가 안보나 보건에 큰 문제가 없는 한 그를 입국시키자는 내용도 들어있었어요. 오늘날 전 세계 195국 중 193국이 유엔 산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정한 국제 여권 표준 서식을 따르고 있답니다.
여권의 발전에는 위조 여권이 미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데요. 원래 여권엔 인물 사진이 없었는데,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 스파이가 미국 여권을 재활용해 영국에 침투했다가 처형된 사건이 있고나서부터는 각국이 여권에 인물 사진을 넣게 돼요. 타인의 여권을 도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그 후에도 위조 여권은 사라지지 않아요. 1968년 미국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암살범이나 2001년 뉴욕 9·11 테러범들이 위조 여권을 사용했던 것이 그 대표적인 예랍니다. 각국은 이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여권의 허점을 메우고 보안성을 높였어요. 특히 9·11 테러 사건 이후에는 전자여권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서 전 세계 인구 77억명 중 10억명이 전자 여권을 가지고 있답니다.
오늘날 전자여권의 가장 큰 특징은 개인의 생체 정보를 전자 칩에 담고 있다는 점이에요. 사람은 저마다 신체적 특징이 있어서 얼굴 특징이나 손가락 지문, 홍채 같은 생체 정보를 신원을 확인하는 핵심 정보로 쓸 수 있어요. 국제 기준에 따르면 전자여권 속 전자 칩에는 여권 소지자의 얼굴 사진이 반드시 들어가야 되고 지문이나 홍채는 선택 사항인데, 우리나라는 얼굴만, 독일 같은 나라는 지문까지 칩에 넣고 있어요.
그럼 여권의 미래는 어떨까요? 일부 전문가는 조만간 여권 자체가 사라지고 스마트폰 앱이나 전자 인증서가 여권 역할을 하게 될 거라고 말하기도 해요. 여권의 형태가 어떻게 변하든지, 여권이 사람의 안전한 통행을 보장해주기 위해 탄생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어요.
이청훈 출입국관리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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