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문 선생님

[여권으로 세상 읽기] '실크로드 길목' 돈황서 발견된 석굴… 번호 매겨진 굴만 492개 달해요

by 제이노엘 2020. 8. 11.
728x90
반응형

[여권으로 세상 읽기] '실크로드 길목' 돈황서 발견된 석굴… 번호 매겨진 굴만 492개 달해요

중국 막고굴

 

중국 여권에는 막고굴(莫高窟) 이미지가 담긴 페이지가 있습니다. 막고굴은 중국 감숙성 돈황(간쑤성 둔황)에 있는 수백 개 석굴(石窟)을 가리키는데요. 이 굴들은 한 시대, 한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서기 366년부터 14세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승려와 석공, 화가, 일반인들이 만든 것입니다. 인도의 아잔타 석굴이 총 30개 굴로 이뤄진 데 반해 막고굴은 번호가 매겨진 굴만 492개이니 그 규모가 대단해요. 중국 여권에 실린 굴은 '96호 굴'인데 9층 전각 뒤로 초대형 미륵불상이 앉아있어 막고굴의 '간판급 굴'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막고굴에는 이보다 더 유명한 굴이 있어요. 바로 '17호 굴'입니다. '장경동'(경전을 모은 굴)', '도서관 굴(Library Cave)'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굴은 약 900년 동안(1002~1900년) 밀폐되어 있다가 우연히 발견된 기이한 사연을 가졌어요. 발견 당시 5만여 개의 고문서와 그림, 각종 유물이 그대로 발견되었으니 마치 900년 전 타임캡슐을 발견한 것과 같았다고 할까요. 이곳에서 나온 유물들은 신라 승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등과 같은 한문으로 적힌 불교 문서가 대부분이었지만, 티베트어나 산스크리트어(인도계 언어), 위구르어(터키계 언어), 소그드어(이란계 언어) 등 여러 종류의 외국어 문서도 나왔답니다. 불교 문서 외에 여러 다른 종교 문서와 천문학 자료도 발견되었지요.

▲   중국 감숙성 돈황(간쑤성 둔황)에 있는‘막고굴’과 이 이미지가 담긴 중국 여권 페이지예요. 옛 실크로드 여행자들은 막고굴에서 여행의 안전을 비는 간절한 기도를 올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위키피디아·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이처럼 국제적인 성격을 띤 자료들이 대체 어떻게 이 굴에 모였는지 그 배경이 궁금한데, 당시 돈황이 고대 실크로드의 중요한 길목이었던 것과 관련이 크다고 해요. 실크로드란 아시아 내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고대 통상로로, '비단길'이라는 뜻이에요. 돈황은 몽골 고비사막과 중국 타클라마칸사막이라는 두 개의 사막 사이에 자리한 오아시스 마을이었기 때문에 실크로드를 지나는 사람은 이곳을 거쳐야 했어요. 특히 막고굴에서는 여행자들이 여행의 안전을 비는 간절한 기도를 올렸지요. 당시는 오늘날처럼 내비게이션(GPS)이 있었던 시절도 아니었기 때문에 한반도 면적보다 넓은 사막을 횡단하며 실크로드를 걷는 것은 수많은 위험 앞에 생명을 내놓는 것과 같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막고굴에서 간절히 절대자를 찾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실크로드 덕분에 먼 옛날 유라시아인들은 비단 같은 특산물을 교환하며 서로의 생각과 철학을 나누었어요.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중국에 전파된 것이나, 중국에서 발명된 종이 제작 기술이 유럽에까지 전해진 것도 실크로드 덕분이었죠. 하지만 당나라 때 가장 번성했던 실크로드는 14세기가 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막고굴의 운명도 마찬가지가 됐답니다.

다만 17호 굴이 왜 900년 가까이 벽화로 가려진 채 감쪽같이 밀폐되어 있었는지에 대해선 추측이 분분해요. 더 이상 문서를 쌓을 공간이 없어서 그 상태에서 폐쇄해버렸다는 설, 11세기 인근 도시 호탄(Khotan)까지 이슬람 세력이 쳐들어오자 불경을 보호하기 위해 황급히 닫아버렸다는 설까지 다양하답니다.

 

이청훈 '비행하는 세계사' 저자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