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은의 세계의 박물관] 달리가 살던 '초현실주의 공간'… 지하엔 그가 묻혀있대요
스페인 피게레스 달리 미술관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 있는 도시 피게레스는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의 도시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달리는 피게레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고, 프랑스 파리에서 초현실주의 예술인들과 교류하고 미국 뉴욕에서 전시회를 여는 등 전 세계 대도시를 돌아다닌 뒤 말년에 다시 고향 피게레스로 돌아왔지요.
달리의 상당수 작품들과 유품들은 피게레스에 있는 '달리 극장미술관'에 기증되었고, 그의 시신은 미술관 지하실에 안치되었어요. 지금도 전 세계 각지에서 달리를 추종하는 사람들과 여행자들이 피게레스 미술관을 찾습니다.
피게레스 미술관은 달리가 어렸을 때부터 동네 사람들이 자주 모이는 극장이었어요. 하지만 이 극장은 스페인 내전(1936~1939)이 벌어지자 완전히 폐허가 되어 버렸습니다. 1960년 피게레스의 시장이 그 망가진 건물을 달리를 위한 미술관으로 재건할 계획을 세웠어요. 피게레스 출신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바로 달리였기 때문이었죠. 1969년 공사가 시작되어 1974년 드디어 달리 미술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10년 후인 1984년 바로 그 옆에 있던 옛 성탑 토레 고르고트까지 미술관 공간으로 확장했어요. 건강이 나빠져 바르셀로나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달리는 피게레스로 다시 돌아왔고, 그 이후부터는 토레 고르고트 성탑에 마련된 개인 특실에서 남은 생을 보냈습니다.
이 성탑과 미술관 꼭대기에는 커다란 달걀들이 여러 개 놓여 있어요. 기독교에서 '새로운 삶'을 뜻하는 달걀은 부활절에 나누어 먹는 음식인데, 달리의 그림 속에도 달걀이 자주 등장해요. 부활의 뜻을 가진 달걀은 그의 이름, 살바도르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사실 '살바도르'란 이름은 죽은 형의 이름이었어요. 달리의 부모는 큰아들을 일곱 살에 잃었고 3년 후에 태어난 동생 달리에게 형의 이름을 그대로 붙여주었어요. 그리고 마치 달리를 큰아들이 되살아난 것처럼 대할 때가 많았다고 해요.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에 있는 달리의 '나르시스의 변신'을 보면 그의 복잡한 내면을 엿볼 수 있는데요. 이 그림에는 고개를 숙인 채 연못에 비친 자기 모습만 슬프게 바라보는 소년이 있습니다. 또 부활을 상징하는 달걀과 달걀의 껍데기를 깨고 피어오른 수선화가 함께 그려져 있어요. 오직 자기 자신하고만 이야기하던 외로운 소년의 영혼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스물다섯 때 달리는 열 살 연상의 여인, 갈라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달리 미술관에 있는 '양 갈비를 어깨에 걸치고 있는 갈라'〈작품2〉 속에 크게 확대된 여인의 얼굴이 갈라예요. 1934년 달리는 뉴욕에서 이 그림을 공개했는데요. 어느 기자가 하필이면 왜 양고기 갈빗대를 갈라의 어깨에 걸쳐 놓았냐고 질문했습니다. 달리는 "난 갈라를 좋아해요. 양 갈비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러니 그 둘을 함께 그리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하고 말했답니다.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이처럼 종종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함께 그려요.
〈작품1〉에서 달리는 피게레스 미술관 내 가구와 휘장, 액자 등을 가지고 당시 유명했던 할리우드 여배우의 얼굴을 만들었어요. 거실이면서 얼굴도 되는 이중 이미지인데요. 배우의 이름을 따서 '메이 웨스트 방'이라 불리는 이 작품은 보는 각도에 따라 금발 여인의 눈·코·입처럼 보여요. 거실이라는 공간 안에서 얼굴이라는 '또 다른 현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사실 피게레스 미술관 자체가 초현실주의 놀이 공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달리는 이 미술관을 두고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내 미술관이 가장 거대한 초현실주의 오브제가 되길 바란다." 옥수수를 머리카락처럼 매달아놓은 입구에서부터 시작해서 '메이 웨스트 방'까지 달리의 환상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답니다.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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