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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선생님

[화폐로 세상 읽기] 370m 높이 바위산 위 궁전… 1500년 전 아누라다푸라 왕국이 남긴 '불가사의'

by 제이노엘 2020.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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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로 세상 읽기] 370m 높이 바위산 위 궁전… 1500년 전 아누라다푸라 왕국이 남긴 '불가사의'

 

스리랑카 2000루피와 시기리야 요새

스리랑카 2000루피(1만2500원·사진)에는 시기리야 요새가 실려 있어요.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서 166km 떨어진 곳에 있는 시기리야 요새는 높이 370m의 '사자 바위(Lion's Rock)' 화강암 봉우리 정상에 있어요. 경사가 가파른 데다, 사방을 에워싼 정글을 내려다보는 위치죠. 오를수록 가파른 시기리야의 바위산에는 피로 얼룩진 왕조의 아픈 역사가 새겨져 있어요.

▲   /세계화폐연구소

 

429년 아누라다푸라 왕국의 명문가에서 출생한 다투세나는 당시 국왕이었던 피티야 군주를 시해하고 463년에 아누라다푸라 왕국의 국왕이 되었어요. 그러나 즉위 10년이 다 되어도 왕태자 책봉을 하지 않았지요. 그러자 첫째 아들 카시아파는 이복동생 모갈라나에게 왕위를 빼앗길까봐 불안했어요. 결국 아버지인 다투세나 왕을 죽이고 왕좌를 차지했지요. 이복동생 모갈라나는 남인도로 추방했어요.

이복동생의 복수가 두려웠는지, 아버지를 죽인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왕이 된 카시아파 1세는 수도 아누라다푸라를 등지고 시기리야 바위산에 왕궁을 건설하고 스스로 갇혀 살았답니다. 11년 뒤 복수하러 돌아온 이복동생 모갈리나 군대와 벌인 전투에서 코끼리를 타고 전쟁을 지휘하던 중 낙상 사고를 당하고 말았어요. 이를 본 카시아파 1세 군사들이 사기를 잃고 도주하자 결국 카시아파 1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답니다. 전투에서 승리한 모갈리나는 시기리야 왕궁을 불교 승려들에게 기증하고 수도를 다시 아누라다푸라로 옮겼어요.

시기리야 왕궁은 오늘날 세계적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데요. 본래 이 바위산은 고대 승려들이 도를 닦던 곳이었어요. 계단을 오르면 좁고 긴 통로인 '거울 회랑'이 시작되는데요. 옛날에는 이 벽이 바위산을 오가는 사람들을 거울처럼 비추었다고 해요. 벽돌에 칠을 먹이고 나서 달걀흰자와 꿀, 석회 따위를 바른 뒤 표면을 문질러 사물이 비치도록 했지요. 벽면에는 왕조의 흥망을 노래한 서사시와 시기리야 벽화의 여인을 칭송하는 시들이 신할라어로 가득 새겨져 있어요.

거울 회랑에서 나선형 계산을 올라가면 미인들이 그려진 벽화가 나타나요. 이 벽화들은 카시아파왕이 참회하는 심정으로 아버지를 위해 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화려한 옷을 입은 시녀들이 시중을 들고 있는 모습이지요. 원래는 시기리야 바위산 둘레에 미인 500명 벽화가 그려져 있었지만 지금은 18명 정도만 남아 있어요. 오랜 세월 비바람으로 침식된 데다 훗날 승려들이 벽화가 너무 음란해서 지웠다고 해요. 1875년 우연히 바위산을 망원경으로 살펴본 영국인이 발견했지요.

좀 더 오르면 바위산 밑 계단을 사이에 두고 사자의 거대한 두 발이 버티고 있는 광장이 나타나요. 원래는 사자 입을 통해 계단을 오르도록 되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사자 발만 남아 있어요. 시기리야라는 이름도 '사자의 목구멍'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바위산 꼭대기 면적은 1만5000㎡로 옛 위용을 가늠할 수 있는 왕궁 건물 터와 저수지, 정원, 연회장 터, 그리고 이들을 잇는 비좁은 계단 길, 카시아파 1세가 앉아 무희들의 춤을 감상했다는 대리석 의자가 남아 있어요. 이곳은 1982년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답니다.

배원준 세계화폐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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