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170년 먼지 쌓였던 악보의 재발견… 첼로를 빛나게 만들었죠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클래식 음악의 인기 순위를 집계하면 언제나 높은 순위를 유지하는 곡이 있습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가 만든 6개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죠. 첼로의 부드럽고 호소력 있는 음색과 바흐의 영감이 합쳐진 위대한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어요. 최근 헝가리 출신 세계적인 첼리스트 미클로스 페레니가 이 곡의 음원을 발매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잊혔던 악보 뭉치의 부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정확한 창작 연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바흐가 독일 쾨텐에서 활동하던 1720년쯤에 작곡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뛰어난 작품이었지만 발표된 이후 170년 이상 세상에서 잊혔죠. 이 모음곡들의 진가를 다시 세상에 알린 사람은 스페인 출신의 전설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살스(1876~1973)였어요.
카살스는 13세였던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찾아간 악기 가게에서 아주 오래된 악보 뭉치를 발견합니다. 그가 찾아낸 바로 그 악보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었어요.
바흐의 아내였던 안나 막달레나가 만든 필사본을 누군가가 다시 옮겨 쓴 것이었죠. 카살스는 당시 소수의 음악학자나 첼리스트들에게만 알려졌었던 이 곡을 깊이 연구해보겠다고 마음먹어요. 그는 오랜 준비 후 25세 때 최초로 모음곡의 공개 연주회를 갖습니다. 이후 1936년부터 1939년까지 녹음해 발표한 음반이 크게 화제를 모았어요. 카살스는 바흐의 위대한 작품을 부활시킨 선구자가 되었죠.
◇첼로의 넓은 음역과 표현력 살려
바흐의 이 모음곡이 최고의 걸작이라 칭송받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바흐의 시대보다 훨씬 오래전에 유행하던 춤곡들을 이용해 첼로 독주를 위한 모음곡을 만들었다는 아이디어가 독창적이죠. 첼로 혼자 연주하는 이 곡들에 맞춰 춤을 추는 귀족은 별로 없었을 것 같아요. 춤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감상'을 위한 춤곡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바흐가 아니면 생각해낼 수 없는 기발한 착상이었던 거죠.
모음곡은 한 곡이 모두 여섯 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그중 알르망드, 쿠랑트, 사라방드, 지그라는 이름의 춤곡은 여섯 개의 모음곡 모두에 공통으로 들어갑니다. 각각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영국을 대표하는 이 춤곡들이 유행했던 시기는 16세기에서 17세기였는데 바흐는 이렇게 오래된 춤곡의 리듬을 첼로 작품에 적용시킨 것이죠.
이 작품이 위대한 또 한 가지 이유는 당시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첼로라는 악기의 가능성을 창의적이고 다양하게 제시한 작품이었다는 점입니다. 바흐가 활동하던 때 첼로의 역할은 독주보다는 고음 악기를 보조하거나 오케스트라에서 저음과 화성을 담당하는 데 그쳤죠. 하지만 바흐는 이 악기의 넓은 음역과 풍부한 표현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다양한 분위기와 색채가 들어간 거대한 모음곡을 썼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들은 바흐가 첼리스트들의 기교와 음악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만든 연습곡의 성격도 갖고 있어요. 첼로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교재이자 콩쿠르, 시험 등에서 반드시 연주해야 하는 필수 작품이기도 합니다.
◇첼리스트라면 누구나 연주하는 인기 작품
아름다운 선율과 독백하듯 연주하는 첼로의 음색이 인상적인 이 모음곡은 첼리스트라면 누구나 연주하는 명곡이 된 지 오래입니다. 이름난 첼리스트라면 대부분 이 곡을 녹음해 음반을 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는 미국 국적의 중국계 첼리스트인 요요마는 이 모음곡에 큰 애정을 가진 것으로 유명해요.
이 곡은 연주하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음악의 분위기가 천차만별로 달라지는데, 어떤 사람은 풍성하고 여유 있는 느낌으로 노래하듯 연주하는가 하면, 춤곡의 느낌을 살려서 가볍고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연주자도 있습니다.
김주영 피아니스트
'신문 선생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을 바꾼 물건] 미국서 1857년 화장실용 종이 첫 발명… 33년 뒤 두루마리, 1차대전 후 티슈 형태도 만들어졌어요 (0) | 2020.11.23 |
---|---|
[화폐로 세상 읽기] 사기꾼·도둑·집시를 그린 파격의 화가… 살인죄로 도피 중 39세에 숨졌죠 (0) | 2020.11.22 |
[수학 산책] A0 용지 절반으로 네 번 자른 크기… 1917년 독일 물리학자 발터 포츠만이 제안했죠 (0) | 2020.11.21 |
[재밌다, 이 책!] 스마트폰 중독, 마음먹으면 고친다? 뇌 발달에 악영향 주는 '질병'이래요 (0) | 2020.11.21 |
[동물이야기] 귀엽게 생겼지만 '하천 최상위 포식자'… 하루에 자기 몸무게 10% 먹어치운대요 (0) | 2020.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