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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을축년 7~9월에 터진 사상 최대 물난리… 가옥 7만채 피해 입었죠

by 제이노엘 2020.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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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의 한국사] 을축년 7~9월에 터진 사상 최대 물난리… 가옥 7만채 피해 입었죠

을축대홍수

올해 긴 장마와 폭우로 전국 곳곳에 큰 피해가 발생했어요.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어르신들은 큰비가 내리면 "또 을축년처럼 되면 어쩌나"라며 걱정하셨지요. 여기서 을축년(乙丑年)이란 우리나라가 국권을 상실한 시대(일제강점기)였던 1925년을 말하는 거예요. 이때 7~9월 세 달간 태풍 4개가 한반도에 상륙하면서 무려 네 차례나 홍수가 났답니다. 오늘은 95년 전 전국에 큰 피해를 안겼던 '을축대홍수'에 대해 알아볼게요.

숭례문 앞까지 밀려든 물 폭탄

'과연 2200호(戶) 전멸 상태/ 시체 200 발견' '교통 두절돼야 상세한 현상은 상금(아직) 미상(분명하지 않음)하나/ 구사일생의 피란민은 구포역에 수용하는 중'….

1925년 7월 15일, 부산 지역 홍수 피해 소식을 전한 조선일보 사회면엔 당시로써는 매우 크기가 큰 기사가 실렸어요. 그만큼 사태가 긴박했던 것이죠. 1925년 7월 8일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11~12일쯤 태풍이 한반도 중부를 강타하면서 폭우로 변했습니다. 황해도 이남 지역에는 무려 시간당 300㎜의 비가 쏟아졌다고 해요.

▲   /그림=김영석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어요. 15일 밤부터 19일까지 또 다른 태풍이 새로 상륙하자 서울과 경기도 일대 피해가 극심해졌습니다. 16~18일 사이 서울·경기 일대에 300~500㎜, 특히 경기도 파주에는 최대 650㎜의 비가 내렸다고 기록됐습니다. 한강도 범람해 최고 수위가 뚝섬에서 13.59m 위까지 넘어갔지요.

당시 폭우로 한강 제방이 무너져 내렸고, 넘쳐난 물이 용산을 거쳐 숭례문 앞까지 밀려왔다고 해요. 침수 지역이 얼마나 넓었을지 상상이 되죠? 당시 용산 일대를 찍은 사진을 보면 물 위에 건물 지붕만 둥둥 떠 있는 모습이랍니다. 서울 용산에 있던 철도청 관사는 1층까지 물이 찼고, 용산역 열차들도 물에 잠겼다고 합니다. 오늘날 한강 주변 동부이촌동, 뚝섬, 잠실동, 풍납동 등 모두 3억㎡에 달하는 땅이 물에 잠겼지요. 8월 초에는 북한 지역에도 호우가 쏟아져 대동강·청천강·압록강이, 9월 초에는 또 태풍이 들이닥쳐 남부 지방의 낙동강·영산강·섬진강이 범람했습니다.

이해에 퍼부은 4차례의 호우로 인해 전국적으로 647명이 사망했습니다. 유실된 가옥은 6363호, 붕괴한 가옥은 1만7045호, 침수된 가옥은 4만6813호로, 홍수 피해를 입은 가옥은 7만221호에 달했지요. 3191만㎡의 논과 6699만㎡의 밭이 비에 휩쓸려 사라졌다고 해요. 당시 홍수 피해액이 1억300만원이었는데, 이는 조선총독부 1년 예산의 58%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액수였다고 합니다. 일제가 이렇게 심한 홍수가 날 것을 고려하지 않고 한강변 낮은 지대에 새로 택지를 만들었기 때문에 피해가 더 커졌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홍수로 발견된 암사동 선사유적지

을축대홍수는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홍수 때문에 거대한 한강 물길도 바뀌었는데요. 원래는 섬이었던 잠실의 남쪽 송파강(지금의 석촌호수)이 한강 본류(本流)였는데, 홍수가 나자 샛강이었던 잠실 북쪽의 신천이 한강 본류가 됐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 온갖 물자가 집결하는 번화가였던 송파강의 송파나루와 송파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누에치기로 유명했던 잠실은 반 세기가 지난 1970년대 이르러서야 택지지구로 개발됐죠. 문화유산 피해도 커서, 당시 뚝섬에 있던 사당 둑신사가 휩쓸려갔고 남한산성·북한산성 행궁은 산사태로 매몰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을축대홍수는 새로운 발견을 낳기도 했습니다. 홍수로 풍납토성 서쪽 벽이 유실되면서 삼국시대 청동 유물이 발견된 것이죠. 이후 발굴 조사가 진행됐는데, 현재 풍납토성은 백제 초기의 왕성인 위례성이라는 학설이 유력하답니다. 신석기시대 집터인 암사동 선사유적지가 모습을 드러낸 것도 을축대홍수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두고 "무심한 물줄기가 한 조각 양심은 있었던 것일까"라고 탄식하는 사람도 있답니다.

을축대홍수는 한국인의 의식 속에 수해와 치수(治水·수리 시설을 잘해 홍수나 가뭄 피해를 막음)에 대한 커다란 경각심을 심어주었습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 역대 정부가 많은 예산을 들여 산림 보호, 다목적댐과 제방 건설, 하천 개수(改修·고쳐서 바로잡음) 등에 노력했던 것도 을축대홍수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을축대홍수가 일어난 지 95년이 지난 지금도 전국에서 하천이 범람하고 산사태가 일어나 피해가 벌어지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에요.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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