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물건] 프톨레마이오스의 볼록렌즈가 기원… 1352년 프랑스 추기경 초상화에 첫 등장
안경
오늘날 많은 현대인이 나쁜 시력을 교정해주는 안경을 쓰고 있죠. 하지만 고대에도 시력이 나쁜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랍니다. 글자 크기를 키워주는 시력 교정 도구는 옛날부터 존재했어요. 로마 제국의 네로(재위 54~68년) 황제는 에메랄드로 만든 시력 교정 도구를 사용했고, 1세기 로마의 철학자인 세네카는 유리 구체에 물을 가득 채워 글자 위에 놓고 봤다고 해요. 2세기 그리스 철학자 겸 과학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는 볼록 렌즈로 글자를 더 크게 보는 제작 방법을 남겼지요.
프톨레마이오스의 볼록 렌즈 제작법은 이슬람으로 전해졌고, 12세기 유럽에 다시 역수입됐어요. 이렇게 만들어진 반구형의 돋보기를 '리딩 스톤(reading stone)'이라 불렀습니다. 안경의 모태가 되는 돋보기인 셈인데, 균일한 세공이 어려운 유리보다 수정을 이용해 만들었지요.
오늘날처럼 얼굴에 착용하는 안경이 만들어진 건 1286년 이탈리아로 추정됩니다. 도미니코회 수도사인 조르다노가 1306년 남긴 설교 내용에 "20년 전 안경 만드는 법을 처음 알아낸 사람에게 말을 걸어 안경 만드는 기술을 알아냈다"고 돼 있거든요. 그러니까 현재 형태의 안경이 나타난 연도는 최소한 1286년이 되는 셈이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 안경 개발자는 안경이 널리 퍼지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조르다노의 동료 수도사인 알레산드로 델라 스피나가 안경 제작 방법을 주변에 널리 알렸다고 해요. 이 즈음 안경을 쓴 사람이 등장하는 그림도 처음 등장하는데요. 1352년 톰마소 다 모데나라는 화가가 프로방스 지역 추기경인 위고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입니다. 두 개의 렌즈를 나무 등으로 'V'자 모양으로 연결해서 코에 거는 형태였어요. 그러니 렌즈 두 개를 활용한 안경은 대략 13세기 후반~14세기 초반 이탈리아에서 처음 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돋보기 형태의 시력 교정 도구는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신라시대 경주 분황사 모전 석탑에서 발굴된 수정 화주(火珠)가 대표적이에요. 634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볼록 렌즈는 신라 왕실의 세 가지 기물 중 하나로 전해지는 선덕여왕의 화주로 추정돼요. 수정을 볼록하게 갈아서 불씨를 얻거나 돋보기처럼 활용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현대식 안경은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유입된 것으로 보여요.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옛날 안경 중 임진왜란 때 인물인 김성일이 쓰던 안경이 가장 오래된 것이죠. 이 안경을 보면 안경다리가 아니라 안경테에 끈을 달아서 안경을 착용했던 것을 알 수 있어요. 또한 조선시대에는 '규일경'이라 부른 검은색 안경도 있었는데, 선글라스 기능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재밌는 건 조선시대에는 윗사람 앞에서 안경을 쓰는 것을 예의에 어긋나는 일로 생각했다는 거예요. 조선 24대 왕 헌종 때 인물인 조병귀는 시력이 굉장히 나빠서 항상 안경을 쓰고 다녔는데, 왕 앞에서도 안경을 썼다가 크게 혼난 적이 있다고 하네요. 또 26대 왕 고종은 일본 공사인 오이시 마사미가 자기 앞에서 안경을 벗지 않는다며 불쾌하게 여긴 적도 있다고 합니다.
김현철·서울 영동고 역사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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