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있는 세계사] 소련이 쏜 세계 첫 인공위성… 하루 7번 미국 상공을 지나갔다
스푸트니크 충격
최근 러시아가 세계 최초로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등록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러시아 정부는 이 코로나 백신의 이름을 옛 소련 시절 발사한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Sputnik) 1호' 이름을 따서 '스푸트니크 V'라고 이름 붙였는데요. 스푸트니크 1호는 냉전 시대 '우주 최초' '세계 최초' 타이틀을 놓고 미국과 소련이 벌인 경쟁 속에서 1957년 소련이 최초로 성공적으로 발사한 인공위성이랍니다. 오늘은 소련이 개발한 스푸트니크 1호와 그로 인해 충격에 빠졌던 국제 사회에 대해서 알아볼게요.
◇소련, 스푸트니크 발사에 성공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전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진영으로 나뉘었어요. 전 세계는 미국과 소련 양편 간 팽팽한 힘겨루기를 벌였지요.
그런데 미국의 34대 아이젠하워 대통령(재임 기간 1953~1961)이 1955년 "지구를 도는 인공위성을 발사할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이른바 '우주 경쟁'이 불붙습니다. 전 세계 전문가들은 미국이 가장 먼저 인공위성을 발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고 해요.
당시 미·소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한 대륙에서 다른 대륙을 공격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었는데요. 이 경쟁이 인공위성 개발에 큰 역할을 합니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은 핵탄두를 장착해 멀리 보내는 발사체였기 때문에 인공위성을 우주로 보내는 로켓과 구조가 비슷했어요.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도 미국을 공격하기 위해 사정거리 5000㎞ 이상의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려 했지만 실패했지요. 이런 가운데 소련이 1957년 8월 21일 세계 최초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인 R-7 로켓 시험 발사에 성공하며 우위를 점하게 됩니다. 그리고 두 나라 모두 서로가 얼마만큼 우주 개발에 성공했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했지요.
◇서방 세계가 느낀 '스푸트니크 쇼크'
R-7 우주 로켓에 실려 우주로 날아간 스푸트니크는 직경 58㎝, 무게 83.6㎏의 동그란 모양에 네 개의 안테나가 달려 있었어요. 주된 임무는 과학자들에게 지구 상층 대기의 성질 등 정보들을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스푸트니크는 98분마다 지구를 한 바퀴씩 공전했어요.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때 거리는 약 940㎞였고 가장 가까울 때 거리는 약 230㎞였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쌍안경으로 스푸트니크가 지구 위를 휙휙 날아가는 것을 관측할 수 있었고, 운이 좋으면 육안으로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스푸트니크는 1958년 1월 4일까지 지구 주위를 돌다가 대기권에 진입해 소멸됐어요.
스푸트니크 1호 발사는 전 세계를, 특히 미국을 큰 충격에 빠지게 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우주·과학 기술 면에서 스스로 소련보다 앞서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게다가 우주 기술은 국민적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어요. 당시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는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이를 가리켜 '스푸트니크 충격(Sputnik crisis)'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스푸트니크 1호 발사 성공으로 서방 세계는 소련의 미사일 개발에 큰 위협을 느꼈습니다. 이는 소련이 언제든지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을 미국 본토로 발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어요. 더군다나 스푸트니크는 하루에 7번씩 미국 상공을 지나갔기 때문에 더욱 두려움이 컸어요.
◇막 오른 우주 경쟁
스푸트니크 발사 이후 미국 정부는 우주 탐사 프로그램에 본격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의회는 스푸트니크에 맞대응할 수 있는 우주 개발 프로그램을 운영할 기관을 설립하기로 합의했어요. 1958년 1월 31일 미국이 최초의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를 발사했고, 그해 10월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설립되었습니다.
백악관, 중앙정보국, 미 공군은 비밀리에 정찰 위성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찰 위성의 이름(코로나·CORONA)조차 외부에 알려지지 않을 정도로 극비 사항이었어요.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국가안보회의(NSC)는 스파이 위성을 통해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을 감시하고 미사일의 위치를 파악하려 했어요.
초기 우주 경쟁에서 소련은 미국을 한 발짝씩 앞서는 듯 보였습니다. 1961년 소련이 최초로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을 태운 우주선 '보스토크 1호'를 발사한 거예요. 그는 1시간 29분 만에 지구의 상공을 일주한 뒤 낙하산을 타고 지구에 귀환해 인류 최초 우주 비행에 성공했지요. 이보다 앞선 1959년에는 최초의 달 탐사선인 '루나 1호'를 발사하기도 했어요.
1969년 미국이 닐 암스트롱을 태운 '아폴로 11호'를 쏘아 올렸고,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인이 달에 착륙했어요. 하지만 우주 개발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늘면서 큰 부담을 느낀 미국과 소련은 1972년 불필요한 우주 개발 경쟁을 자제하는 내용의 '미소우주협력협정'을 맺었답니다. 이렇게 15년간의 '우주 경쟁'은 일단락됐죠.
스푸트니크 발사는 미국과 소련 간 우주 경쟁을 부추겼지만 결과적으로 큰 과학 기술 발전을 이끌었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스푸트니크가 없었다면 달 착륙도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해요. 오늘날 미국과 러시아는 다른 여러 국가의 우주비행사들과 함께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윤서원 서울 단대부고 역사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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