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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선생님

[법학에세이] 외뿔 달린 '해태', 저울을 든 '유스티티아' 여신… 정의를 상징해요

by 제이노엘 2020.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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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에세이] 외뿔 달린 '해태', 저울을 든 '유스티티아' 여신… 정의를 상징해요

 

법의 상징

▲   그리스·로마 신화 속 ‘정의의 여신’(왼쪽)과 ‘법(法)’을 뜻하는 고대 중국의 상형 문자예요. /위키피디아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은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국민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법'이라는 말만 들어도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지죠. 그런데 법은 알고 보면 매우 재미있는 논리 구조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 공기 같은 존재랍니다. 오늘은 '법'이라는 단어의 유래와 상징물 이야기부터 해볼게요.

우리말에서 '법(法)'은 글씨 쓰는 법, 운전하는 법 같이 '해야 할 도리나 정해진 이치'라는 의미를 갖고 있어요. 말 자체에 '당연히 따라야 하는 옳은 방식'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셈이죠. '法'이라는 한자는 '물 수' 변(氵)에 '갈 거'(去)가 결합된 모습인데요. 이는 네모난 제사상을 앞에 두고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는 사람을 표현한 고대 중국 상형문자에서 만들어진 거예요. 자연의 뜻, 신의 의지를 담고 있는 것이 바로 법이란 의미죠.

그런데 '法'의 옛 글자 오른편을 보면 낯선 모양이 하나 자리 잡고 있네요. 획수가 너무 많아서 나중에 사라져버린 글자인데 뿔 달린 머리와 커다란 눈, 꼬리까지 마치 무서운 괴물처럼 보여요. 바로 동양에서 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상상 속 동물 '해태(해치)'입니다.

예로부터 해태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동물로 여겨져왔어요.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해태 앞에 데려다놓으면 그 가운데 죄가 있는 사람만 골라 머리 한 가운데 달린 외뿔로 들이받았다고 해요. 그래서 동양에선 사법기관 앞에 해태상을 두거나 아예 관복에 해태를 새겨넣기도 했어요.

해태 신화에서 눈여겨볼 점은 죄가 있는지 최종 판단을 사람이 아닌 동물에게 맡겼다는 것입니다. 죄와 벌을 가리는 판단이 초월적인 자연의 법칙과 신의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뜻이에요. 해태가 뿔로 죄 있는 자를 들이받아 벌했다는 것 또한 법이 가지고 있는 '강제력'을 상징하는 것이죠.

그렇다 보니 머리에 뿔이 있는 다른 짐승이 법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양인데, 실제 '정의'의 '의'(義)자 윗부분에는 양(羊)이 올라앉아 있어요. 서양에선 뿔 달린 말인 '유니콘'이 정의와 법의 상징으로 여겨졌죠.

서양에서 법의 상징은 그리스 신화 속 '정의의 여신'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선 '디케(Dike)', 로마 신화에선 유스티티아(Justitia)라고 불리는데, 정의를 뜻하는 영어 단어(justice)가 로마식 이름에서 비롯된 거예요. 이 '정의의 여신'은 한 손에 양팔 저울,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눈에는 눈가리개를 두르고 있는데요. 원래 그리스 신화 속 정의의 여신은 저울만 들고 있는데, 중세를 거치며 벌을 내린다는 뜻의 칼이 덧붙게 되었어요.

정의의 여신상에 눈가리개가 추가된 건 15세기 들어서였습니다. 당시 유럽에선 상공업으로 큰돈을 번 시민 계층(부르주아)이 주류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었고, 빈부 격차가 커지면서 돈과 권력을 쥔 부르주아에게 유리하게 법이 집행되는 일이 늘어났어요.

이런 세태에 화가 난 독일 시인이자 법학자인 제바스티안 브란트는 '바보들은 모두 배에 태워서 바보들의 섬에 보내버려야 한다'는 풍자를 담은 책 '바보들의 배'에서 정의의 여신이 잔재주를 피우는 광대들로부터 눈이 가려져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내용과 삽화를 실었답니다. 이때부터 눈가리개를 한 정의의 여신상이 널리 알려지게 된 거예요.

우리나라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에는 눈가리개가 없어요.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고, 의자에 앉은 모습입니다. 대법원에 가보면 한번쯤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곽한영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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