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으로 세상 읽기] 거북선·김홍도의 풍속화… 역사 속 27개 문화유산 담았죠
대한민국 새 여권
당초 계획대로라면 올해는 '새 대한민국 여권'〈작은 사진〉이 발행되는 해입니다. 지난 2018년 정부가 여권 표지 색상을 녹색에서 남색으로 바꾸고 보안을 강화한 새 여권 시안을 공개했었죠. 하지만 코로나 확산으로 해외여행 수요가 급감하면서 현행 여권의 재고가 너무 많이 남아서 새 여권 발급이 내년 말쯤으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해요.
그렇다면 우리나라 새 여권의 모습은 어떻게 바뀔까요? 정부가 공개한 확정안에 따르면, 새 여권에는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우리 민족의 역사를 총망라한 27개 문화유산들이 실립니다.
먼저 훈민정음의 경우 현행 여권에도 실려 있긴 하지만, 신원 정보 기재면을 감싸고 있는 얇은 막에 인쇄돼 있어 희미하게 보여요. 그런데 새 여권은 사증 페이지에 '훈민정음언해' 어제(御製·임금이 직접 지음) 서문과 설명을 크게 실을 예정입니다. '새로 스믈여듧 字랄 맹가노니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라는 부분입니다.
거북선을 강조한 이미지도 눈에 띕니다. 거북선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을 무력화하기 위해 고안된 돌격선으로 공격과 방어, 이동성 측면에서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는 배죠. 거북선 역시 현행 여권에 그려져 있지만 주민등록번호가 기재된 부분에 얼핏 보이는 정도인데, 새 여권은 별도 페이지를 할애해서 거북선을 그렸답니다. 조선시대 정조(1795년) 때 편찬된 '충무공전서'에 실린 '전라좌수영 귀선도(龜船圖)' 이미지예요. 이 그림은 현존하는 조선시대 거북선 그림 2점 중 하나여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해요. 오늘날 우리나라 조선(造船) 회사들이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을 만들고 세종대왕함 같은 첨단 군함을 만드는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아요.
이 밖에도 새 여권에는 조선시대 풍속 화가 단원 김홍도가 그린 '춤추는 아이',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이 인왕산 풍경을 그린 '인왕제색도'가 실려 있답니다. '춤추는 아이'는 오늘날 K팝 등 한류의 힘을 연상시키고, '인왕제색도'는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담은 진경산수화의 멋을 보여줍니다. 또 백제 금동대향로, 신라 경주 불국사 석가탑, 고구려 강서대묘 벽화 등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들을 선보여요. 현행 여권이 창덕궁 인정전, 종묘 영녕전, 숭례문, 수원성 등 건축물에 주로 집중하는 것과 다른 점입니다.
보안 측면을 보면 새 여권은 신원 정보 기재면을 종이가 아닌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들어서 얼굴 사진을 그 위에 레이저로 새긴다고 해요. 과거에는 여권에 증명사진을 풀로 붙이던 시절도 있었고, 지금은 얼굴 사진을 고해상도로 스캔한 후 여권에 디지털로 인쇄하는 기법을 쓰고 있죠. 미국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 주인공의 실제 모델이자 유명한 보안 전문가인 프랭크 애버그네일(72)은 "기술이 발전하면 위조 기술도 발전한다. 그러므로 그에 대항하는 기술은 계속 더 발전해야 한다"고 했는데요. 앞으로도 끊임없이 진화해나갈 여권의 변신이 기대됩니다.
이청훈 '비행하는 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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