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은의 세계의 박물관] 터키에 있던 그리스 '페르가몬 신전' 통째로 옮겨와 복원했죠
독일 페르가몬 박물관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관통하며 흐르는 슈프레강 한가운데에는 '박물관 섬(Museum Island)'이 있습니다. 알테스뮤제움, 노이에스뮤제움, 옛 국립미술관, 보데 박물관, 페르가몬 박물관 등 독일이 자랑하는 다섯 개의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는 섬인데요. 19~20세기 독일 제국의 전성기 시절을 상징하는 건축물입니다.
이 중 페르가몬(Pergamon) 박물관은 제일 나중에 세워진 건물이면서도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는 명소예요. 독일의 건축가 알프레드 메셀의 설계로 1910년 짓기 시작해서 1930년 완공되었습니다.
이 박물관 이름이 '페르가몬'인 이유는 가장 인기 있는 유물인 '페르가몬 신전'〈사진1〉 때문입니다. 페르가몬은 오늘날 터키 이즈미르에 속한 지역으로, 고대 그리스 시대 말기의 뛰어난 예술이 꽃피우던 도시였습니다. 페르가몬 고지대의 가파른 곳에 세워져 있던 이 신전은 제우스신과 아테나신을 모시는 제단이었는데, 정면 폭이 35m, 세로 길이가 33m에 이르지요. 앞에 보이는 계단의 폭도 20m나 돼요.
페르가몬 신전은 1878년부터 11년간 독일의 공학자 칼 후만 지휘 아래 발굴되었어요. 마구 훼손되어 뒤섞여 있던 수천 개의 건물 파편을 독일 제국으로 가져와 원래 형태로 맞추는 복원 작업을 했지요. 당시 이 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오스만제국은 이슬람 문화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 제국은 고대 그리스 유물인 페르가몬 신전을 헐값에 사들여 가져오는 거래를 할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복원한 페르가몬 신전을 전시하기 위해 아예 새로 박물관을 지은 거예요.
페르가몬 신전 표면을 잘 보면 가로띠처럼 인물 조각상들이 빙 둘러져 새겨져 있는데, 이런 띠를 프리즈(frieze)라고 부릅니다. 이 프리즈의 길이가 113m에 달해요.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신이 이끄는 올림포스 신들이 거인족과 싸워 이기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다루고 있는데요. 〈사진2〉를 보면 아테나 여신의 얼굴이 훼손되어 있긴 하지만 방패를 들고 무장한 모습으로 가운데 당당히 서서 적의 머리카락을 쥐고 있는 걸 볼 수 있어요. 아테나 여신 뒤쪽엔 날개를 단 승리의 여신 니케가 보이고, 땅 아래에선 거인족의 어머니 가이아가 솟아오르고 있네요.
페르가몬 박물관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요한 유물인'이슈타르 문'〈사진3〉입니다.'강과 강(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땅'이라는 뜻의 메소포타미아는 현재 이라크와 시리아, 터키, 이란의 일부를 포함하는 넓은 지역이에요. 기원전 7세기 말 바빌론이 강력한 세력으로 떠오르면서 네부카드네자르 2세(재위 기원전 605~562)가 거대한 왕궁을 짓고 도시 주위에 요새 성벽을 세운 뒤 여덟 개의 문을 만들었어요. 이슈타르 문이 그 하나죠.
옛 서울의 남대문처럼, 이슈타르 문은 바빌론 주요 거리와 사원으로 통하는 주 출입구였답니다. 높이가 14.3m에 달하는 이 문도 20세기 초 독일의 고고학자가 발굴했고 조각조각 쪼개져 독일로 옮겨진 후 복원되었어요.
유약을 발라 구운 푸른 벽돌문 표면 위에는 바빌로니아 신들을 상징하는 황금빛 동물상들이 도드라져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나오는 전쟁과 사랑의 여신 이슈타르가 흰 사자의 모습을 하고 있어요. 새해가 되면 바빌론 사람들은 이슈타르 문을 통과하는 의식을 치렀어요. 행렬이 지나가는 길 양옆 벽에는 〈사진4〉에서 보듯 120마리의 흰 사자가 양쪽으로 죽 늘어서 있습니다. 이슈타르가 행렬 속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의미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베를린의 많은 건물이 파손됐고 페르가몬 박물관도 심한 피해를 입었어요. 소장품 일부는 전쟁 중 러시아에서 가져갔다가 1958년에야 동베를린에 되돌려주었습니다. 페르가몬 박물관을 둘러보면 강대국이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지배하던 제국주의 시기 문화적 유물들이 어떻게 다뤄지고 관리됐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주은·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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