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야기] 예술혼에 사로잡혀 타히티로 떠난 남자… 프랑스 후기인상파 화가 폴 고갱 모델로 했죠
달과 6펜스
당신을 사로잡고 있는 그 한없는 갈망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어요. 어쨌든 당신은 자신을 괴롭히는 정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고독한 모색의 길을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당신은 존재하지도 않는 신전을 찾아나선 영원한 순례자 같아 보여요.
영국 작가 서머싯 몸(1874~1965)이 1919년 발표한 소설 '달과 6펜스(The Moon and Six pence)'는 20세기 세계 문단에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아요. 그는 인간의 성격과 심리를 표현하는 데 탁월했는데, 대표적 작품이 바로 '달과 6펜스'죠.
작품 속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40대 주식 중개인으로 영국 런던에 사는 상류층 사람이에요. 그런 그가 갑자기 그림을 그리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혀 아내와 자녀들을 남겨두고 파리로, 다시 타히티섬으로 떠나요.
'타히티' 하면 혹시 생각나는 사람이 있지 않나요? 맞아요. 바로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입니다. 고갱은 30대 중반에 화가의 길로 들어섰는데, 남태평양 중부 타히티섬에서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어요. 찰스 스트릭랜드가 고갱을 모델로 한 인물이죠.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가족을 떠나 파리를 떠돌며 그림을 그렸지만 화가로서 빛을 보지 못했어요. 타히티에 들어가서야 자신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죠. 스트릭랜드의 삶이 꼭 고갱과 같아요.
파리의 낡은 호텔방을 전전하던 스트릭랜드는 우여곡절 끝에 타히티에 정착하고 원주민 아타와 결혼하고 아이도 낳아요. 하지만 평화로운 생활도 잠시, 스트릭랜드는 나병에 걸리고 말죠. 이렇다 할 치료법이 없었던 시대였으니 스트릭랜드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지만 죽기 전에 걸작을 남겨야 한다는 욕망에 사로잡혀요. 스트릭랜드는 오두막집에서 영혼을 쏟아부어 걸작 중 걸작을 남기죠.
그러나 그 걸작을 본 사람은 단 세 명, 스트릭랜드와 아타, 그리고 치료를 위해 오두막을 오갔던 의사가 전부예요. 인간의 솜씨라고는 믿을 수 없는 작품 속에는 원시림과 벌거벗은 사람들, 즉 타히티섬 그 자체가 담겨 있었어요. 타히티 원주민들이 한둘도 아닌데, 왜 그림을 본 사람은 저 셋이 전부였을까요. 스트릭랜드가 죽기 전 아타에게 그림, 아니 오두막 전체를 불태워달라고 했기 때문이에요. 스스로 걸작을 남겼으면 그뿐, 누구에게 보여줄 이유가 없었던 거죠.
사실 스트릭랜드의 삶은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아요. 그는 아내와 자녀를 버리면서까지 자신만의 세계를 찾으려 했어요. 그런데도 후대 평론가들은 스트릭랜드가 찾고자 했던 순수한 예술에 대한 열정을 높이 사요. 그런 광기와도 같은 예술혼이 오늘날 문명사회를 풍성하게 했기 때문이죠.
마지막으로 제목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갈까요? 제목 중 '달'은 스트릭랜드, 즉 인간이 꿈꾸는 이상 또는 열정을 상징해요. 그럼 '6펜스'는 뭘까요? 펜스는 영국 동전인데, 말 그대로 세속적인 것을 뜻해요. 아주 보잘것없는 돈이지만 현실의 삶을 유지해주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죠. 이상에 충실한 삶도 좋고, 현실에 만족하는 삶도 좋아요. 그 중간을 잘 찾을 수 있다면 더더욱 좋겠지요.
몸은 이 소설을 쓰려고 직접 타히티를 방문해 고갱의 흔적을 찾아 다녔어요. 몸은 고갱이 타히티에 머물렀을 때 살았던 오두막 문짝의 그림도 가져왔죠. '달과 6펜스'는 발표와 함께 큰 성공을 거뒀고, 문명을 떠나 원시 자연으로 돌아간 고갱의 삶은 전설로 남게 됐답니다.
장동석 출판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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