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있는 세계사] 중국 최대 백과사전 편찬… 세계 최대 궁궐 '자금성'도 세웠죠
영락제
명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중국 최대 백과사전 '영락대전(永樂大典)' 필사본이 최근 한 경매에서 812만8000유로(약 114억원)에 낙찰돼 화제가 됐어요. 필사본이 이처럼 비싼 가격에 낙찰되는 건 드문 일이라 '영락대전'이 그만큼 귀한 유물이란 걸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는 평가가 나왔죠.
1408년 완성된 '영락대전'은 당대 최고의 학자 2000여 명이 엮은 일종의 백과사전이에요. 역사, 지리, 문학, 예술 등 다양한 지식을 망라하고 있고, 글자 수만 해도 대략 3억7000만자에 달하죠. 영락대전은 명나라 3대 황제인 영락제(1360~1424)가 명령해 만들어졌는데요. 이렇게 어마어마한 백과사전의 집필을 명한 영락제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야심만만한 명 태조의 넷째 아들
영락제는 명나라를 건국한 태조 주원장(1328~1398)의 스물여섯 아들 중 넷째입니다. 본명은 '주체'였는데, 다른 형제들보다 매사 적극적이고 야심만만해 일찍부터 아버지의 주목을 받았어요.
영락제가 태어났을 당시 중국은 원나라가 통치하고 있었어요. 주원장은 가난한 농부 출신이었지만 탁월한 지도력으로 농민 반란군인 '홍건적'을 이끌었지요. 원나라를 물리친 주원장은 중국 땅을 통일하고 1368년 명나라를 세웠답니다. 이후 남경(난징)을 수도로 삼고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 아들들을 각 지방으로 보내 다스리게 했어요. 주체도 북평(오늘날 베이징)을 다스리는 연왕(燕王·베이징을 다스리는 책임자)에 책봉되었습니다.
당시 북평은 몽골족과 여진족이 있는 북쪽과 가까웠기 때문에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어요. 주체는 이곳을 다스리며 몽골족의 위협을 물리치고 경제를 안정시켰어요. 북평은 주원장 아들들이 나눠 다스리는 지역 중 가장 부강한 곳이 됐지요.
1392년 태조의 첫째 아들인 황태자 주표가 갑자기 세상을 떠납니다. 태조는 내심 넷째 아들인 주체를 황태자로 삼고 싶었지만, 신하들이 둘째·셋째 아들을 제치고 주체를 황태자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반대했지요. 어쩔 수 없이 태조는 당시 열 살에 지나지 않았던 주표의 맏아들 주윤문을 후계자로 삼았어요. 조카가 황태자가 됐다는 소식에 주체는 큰 불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조카의 왕위를 빼앗고 황제로 즉위
1398년 태조가 세상을 떠나자 황태자 주윤문이 열여섯 살 어린 나이에 즉위했습니다. 그가 바로 2대 황제 건문제입니다. 건문제는 황권을 위협하는 숙부들의 세력을 약화하기 위해 그들의 신분을 박탈하거나 멀리 추방했어요. 특히 신하들은 주체를 가장 위협적인 인물로 여겼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주체는 '지금 신하들이 황실에 계속 존재하는 한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1399년 7월 정예군을 이끌고 남경으로 향했습니다. 쿠데타를 일으킨 거예요. 명분은 '정난(靖難)', 즉 황제를 에워싸고 있는 간신들을 처단하고 어지러운 나라를 바로잡겠다는 것이었죠.
3년에 걸친 공방전 끝에 1402년 남경이 함락됐습니다. 주체와 내통한 환관들이 성문을 열어주었다고 전해져요. 남경에 입성한 주체는 궁궐을 이 잡듯 뒤지며 조카의 행방부터 쫓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답니다.
주체는 자신에게 반대했던 신하들을 잔혹하게 처단한 뒤 3대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연호는 '영락'이라 했지요.
◇남경서 북경으로 천도
그는 황제가 된 뒤에도 수많은 사람을 처형하는 등 무서운 권력을 휘둘렀어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완성하겠다며 '북평'을 '북경'으로 이름을 바꾸고, 1407년 '북경 천도'를 선포한 뒤 도시 정비를 거쳐 1421년 천도했습니다. 남경에선 자신의 정통성을 제대로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한 거예요.
영락제는 절대황권을 과시하기 위해 '거대한 것'에 많은 집착을 보였어요. 대표적인 것이 북경에 세계 최대 궁성인 자금성을 짓도록 명한 것이에요. 전체 면적만 72만㎡(약 22만평)에 이르는 자금성을 짓는 데 약 100만 명의 노동력이 동원되었고 1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영락제는 해외로 세력을 팽창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 했습니다. 몽골 세력을 완전히 진압하기 위해 5차례나 직접 전쟁터에 나갔고, 안남(오늘날 베트남)을 무력으로 정복해 명나라로 병합했어요. 다만 영락제가 사망하자 그의 아들 홍희제는 몽골 원정이나 해외 원정을 모두 중단하고, 민생을 챙기며 내치(국내 정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었답니다.
[정화의 남해 원정]
영락제는 자신의 위엄과 명나라의 위상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다른 나라와의 무역도 시도했어요. 이를 위해 정화라는 환관을 시켜서 해외 원정을 단행하게 했습니다. 여기에는 건문제가 바다 건너 어딘가에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영락제의 불안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해요. 이것이 '정화의 남해 원정'입니다.
환관 정화는 1405년 병사 2만7800명과 함선 62척을 거느리고 명나라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1433년까지 모두 7차례에 걸쳐 동남아시아, 인도, 아라비아 반도, 아프리카 케냐까지 항해했지요. 정화의 선단은 비단, 차, 도자기, 동전, 금은보화 등 명나라의 온갖 진귀한 물건을 외국에 전해주었고, 명나라 황실도 향료, 염료, 후추 등 외국 특산물과 기린, 얼룩말, 타조 등 희귀한 동물들도 들여왔어요. 영락제 시절 30여 국 사절과 상인들이 중국을 오가며 활발한 무역 활동을 펼쳤고, 명나라의 강대함은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죠.
서민영 경기 함현고 역사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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