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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책

[제이노엘] [무신 정변] 군인들이 다스린 정치

by 제이노엘 2017.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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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이노엘 입니다.



어렸을 때 저는 문관 보다는 왕이, 그리고 왕 보다는 무장이 더 좋았습니다.


무장은 곧 무신을 말하며 실제 군인이고 전쟁하는 장수, 장군들을 말하지요.


어린 마음에 왜 그랬을까요? 멋있었기 때문입니다.


칼자루를 들고 활을 쏘며 말을 타고 적을 죽이는 그 멋진 모습에 반했었지요.



고려 시대 왕릉을 보면 군인 모습을 한 돌 조각상이


문신 관리 모습을 한 돌 조각상보다 한 계단 낮은 곳에 있습니다.


군인들은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쳐 싸웠지만, 승진도 안 되고 문신들에게 무시를 당했다는 걸 알 수 있지요.


그래서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정치를 하던 무신 정권 시대가 있었습니다.




무신 정변의 원인 - 문신의 갓을 쓴 사람은 씨를 남기지 말아라


무신들의 불만 - 문무의 차별 대우


고려 시대에 무과가 실시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요?


무신들은 승진도 잘 되지 않았고, 문신들이 군대의 최고 자리에 앉아서 총 지휘를 했습니다.


게다가 전쟁은 어찌나 많은지….


수시로 거란족, 여진족과 싸우느라 목숨을 바치는 상황에서도 늘 무시당하기 일쑤였지요.




무신 정변(1170)


1170년 8월 30일.


의종은 개경 부근 보현원으로 나들이를 떠났고, 쉬는 시간에 무신들이 수박희라는 놀이를 했습니다.


마침 젊은 무사와 나이 많은 장군 이소응이 겨루게 되었고, 이소응이 경기에서 적당히 싸우다 지는 듯 기권을 했습니다.


그러자 한뢰라는 문신이 그를 나무라며, 계단 위에 서서 힘껏 때렸다는군요.



아무리 무신이라지만 정 3품의 높은 관직에 있었던 이소응이 굴러 떨어지자 무신들은 크게 화가 났습니다.


특히 정중부의 분노는 대단했고, 그는 반란을 계획했습니다.


어두운 밤을 이용해 무신들은 잠자는 문신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지요.


무신들은 궁궐까지 쳐들어가서 의종을 멀리 거제도로 귀양 보냈고, 의종의 동생인 명종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명종은 허수아비 왕이었지요.


정치는 무신들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귀양 간 의종은 이의민에 의해 살해됐습니다.


이 사건을 무신 정변이라고 합니다.


그 후로 100년 동안 고려는 무신들의 세상이었지요.


왕은 있었지만, 정치는 무신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지요.


이 시기를 무신 정권 시대라고 합니다.




무신은 왜 왕이 되려고 하지 않았나요?


삼국 시대의 왕들은 주로 알을 깨고 나왔던 것 기억하지요?


왕은 하늘이 내린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옛날 사람들은


함부로 왕을 바꾸면 백성들에게 원망을 사서 더 큰 화를 입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왕이 되지 않고 권력만 누렸는데, 실제로는 왕과 다를 바가 없었지요.



무인 정권의 경과 - 나도 권력을 잡고 싶다고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어 줄 것 같았던 무신들은


이전의 문벌 귀족들보다도 더욱 권력과 땅을 차지하기 위해 열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오래도록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지요.


그렇지만 “칼로 일어선 자는 칼로 망한다.”는 말처럼


결국 무신들 사이의 내분과 권력 다툼으로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빈번하게 생겼습니다.



처음 권력을 잡았던 이고는 이의방에게 죽고,


이의방은 정중부에게 죽고,


정중부는 경대승에게 죽었습니다.


젊은 경대승은 도방이라는 사병까지 만들어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며


죽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나이 서른 살에 병들어 죽었습니다.


인간의 일이란 정말 알 수가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후 권력은 이의민에게 넘어갔고,


이의민을 노비 출신이라고 욕하던 최충헌이 그를 제거하고 최고 권력자가 되었지요.




최씨 정권 - 가장 오랫동안 권력을 잡은 무인


최충헌이 권력을 잡은 후 무신 정권은 비교적 안정되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최충헌의 아들 최우, 손자인 최항, 증손자인 최의까지


4대에 걸쳐 60여 년 동안 최씨 집안에서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최씨 정권은 다른 정권에 비해 비교적 안정된 전형적인 무신 정권이라 할 수 있지요.



나라 안의 모든 권력을 장악한 최충헌은 마음대로 왕을 폐위시키는 등 횡포를 부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왕에게는 관리들의 잘못을 고치자는 개혁안을 올려 스스로를 합리화했지요.


1209년에는 자신의 집에 교정도감이라는 관청을 설치해


교정별감의 자리에 앉아 국정 전반에 관한 모든 일을 결정했습니다.



도방을 두어서 자신의 보디가드로 이용하고,


이것도 모자라 삼별초라는 사병 조직을 만들어 오늘날의 경찰처럼 활용했습니다.


왕은 있지만 모든 권력은 최충헌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기존의 정치 기구들도 모두 그 역할을 잃어버리고 말았지요.



최충헌은 정방을 차려놓고 정부의 모든 인사 행정을 결정했습니다.


왕이라고 해도 그 결정에 반대할 수 없었고 따라야 했지요.


무신 정권 시대에도 나름대로 문신을 중요하게 여겨서


이규보와 같은 신하의 학문 활동을 뒷받침해주기도 했지만, 국가의 기강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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