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제이노엘 입니다.
왕실과 결혼한 귀족 가문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줄타기를 잘 했던 사람들.
예전에도 이런 줄서기가 있는 것에 대해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겠지요.
어떤 사람은 유치원 다닐 때 나의 장래 희망은 이모랑 결혼하는 거라 합니다.
왜냐하면 이모는 얼굴도 예쁘고, 선물도 잘 사주고, 놀이 동산에서 재미있게 놀아주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사실 누가 이모랑 결혼하겠습니까?
그런데 고려 시대 인종은 이모랑 결혼을 했다는데, 인종은 왜 이모랑 결혼을 했을까요?
문벌 귀족 - 모든 것을 가졌는데 더 갖고 싶었던 사람들
고려는 호족이 세운 나라였지만, 과거제와 호족 숙청 과정에서 새롭게 관직에 오른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음서제로 자식들도 모두 높은 벼슬에 올랐구요.
국가에서는 관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시과라는 토지를 나누어 주었는데,
이 토지는 관직에서 물러날 때 반납하는 게 원칙이랍니다.
그런데 공신이나 고위 관료들은 이를 반납하지 않고, 자식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공음전이라고 하구요.
그것도 모자라 백성들에게 고리대를 빌려주고 갚지 못하면 땅을 빼앗고 노비로 만들었습니다.
음서제와 공음전을 이용해서 문벌 귀족은 대대로 권력과 경제력을 누렸고 왕권까지도 위협했습니다.
힘이 강력크해지면 다들 왕이 되고 싶은가 봅니다.
신진 세력, 무신, 하층민 - 귀족에게 불만을 가진 사람들
귀족들이 중요한 관직을 독차지했기 때문에,
과거에 급제했어도 집안이 좋지 않은 신진 세력은 높은 관직에 오를 수 없었습니다.
군대의 최고 지휘권도 문신 귀족이 독차지하고 있어서 무신들은 불만이 많았겠지요?
백성들 또한 불만이 많았습니다.
여진 정벌로 세금 늘어났지, 귀족에게 돈 빌려 쓰다가 땅 빼앗겼지, 결국엔 고향을 등지고 떠돌이 생활까지….
개경은 수도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풍수지리설까지 유행을 했습니다. 이 소문 때문에 사회는 더욱 불안해졌지요.
전시과는 무엇일까?
경종은 과거제로 뽑힌 신하들에게 월급을 주기 위해서 전시과를 만들었습니다.
요즘처럼 돈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전지와 시지라는 땅의 권리를 주는 제도입니다.
관리를 18등급으로 나누었는데, 전지는 농사를 짓는 땅, 시지는 땔감을 채취하는 땅을 말하지요.
이 때 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생산된 것들에 대해 세금을 걷을 수 있는 권리인 수조권을 주는 거라 합니다.
이자겸의 난 - 권세가 지나치면 독이 된다
경원 이씨 집안은 왕비와 후궁을 10명이나 배출하며
고려 사회에서 왕보다 더 큰 권세를 누린 대표적인 외척 가문이라 말합니다.
이자겸은 5명의 딸 중 3명을 왕실에 시집보냈습니다.
아래의 그림을 잘 보면 17대 왕이었던 인종이 2명의 이모와 결혼한 것을 알 수 있지요.
인종이 이모를 사랑해서라기보다는
외할아버지의 권세가 너무 커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군요.
당시 이자겸은 왕을 능가하는 최고의 권력자였습니다.
그는 정치적 권력뿐만 아니라 왕실에서 받은 많은 토지로 경제적 기반 또한 확고했지요.
그런데도 백성들의 토지를 빼앗는 등 끊임없는 욕심을 부려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십팔자(十八子)가 왕이 된다.”는 소문을 듣고, 이자겸은 왕위를 노리기 시작했습니다.
왕비였던 자기 딸을 시켜 독이 든 약을 왕에게 먹이도록 했는데, 왕비가 들고 가다가 넘어져 버렸지요.
다시 독이 든 떡을 주었는데, 이번에는 왕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는 대신 까마귀에게 먹였습니다.
왕위 유지에 위협을 느낀 인종이 이자겸을 제거하려 했지만
오히려 1126년에 이자겸의 사돈인 군인 척준경의 반격을 받아 왕궁이 불에 타는 등 위기에 처했습니다.
인종은 이자겸의 난을 어떻게 진압했을까?
이자겸의 노비와 척준경의 노비 사이에 벌어진 싸움 때문에 둘 사이가 나빠졌을 때를 이용했습니다.
인종은 척준경에게 지난 일은 생각하지 말고
나라를 위해 이자겸을 제거해 큰 공을 세울 것을 간곡하게 부탁하는 편지를 썼습니다.
이에 넘어간 척준경은 무력을 동원하여 이자겸을 제거하고 그의 처자들을 귀양 보냈지요.
이자겸의 두 딸은 당연히 폐비가 되어 쫓겨 났습니다.
척준경은 이 일을 계기로 권세를 누렸지만 결국 귀양 가서 죽었습니다.
욕심이 지나친 권세자들의 최후를 보여주는 사건이지요?
굴비와 이자겸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십팔자(十八子)가 왕이 된다는 게 무슨 소리지?
이 한자를 잘 합쳐보면 ‘이(李)’자가 되거든요. 잘 합쳐 보세요.
횡포를 부리던 이자겸은 전라남도 영광에서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칠산 앞바다에서 잡힌 조기 맛에 반하여 이 조기를 소금에 절여 바위에 말렸어.
그 후에 이자겸은 자기가 ‘비굴’하지 않다는 뜻으로
굴할 굴(屈), 아닐 비(非)의 굴비(屈非)라고 이름 지어 임금에게 진상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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