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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책

[제이노엘] [붕당] 벼슬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

by 제이노엘 2018.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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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이노엘 입니다.



예전에 학교에서 반장 선거를 하는데, 반장 후보는 민수하고 수민입니다.


친구들은 민수를 뽑자는 사람과 수민이를 뽑자는 사람으로 나뉘어,


민수하고 수민이가 왜 반장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나는 민수랑 제일 친하지만, 수민이가 똑똑해서 좋은 반장이 될 것 같기도 하구요.


누구를 뽑아야 할지 정말 고민스럽습니다.



붕당 : 학문적·정치적 입장을 같이하는 양반들이 모여 구성한 정치 집단.



사화(士禍) - 양반들이 둘로 나뉘었어


훈구파와 사림파는 어떻게 다른 걸까?


조선 건국을 이끈 사람들이 신진 사대부라는 건 알고 있지요?


그런데 신진 사대부들은 건국 당시부터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를 훈구파라고 하는데, 권력의 중심에서 조선의 여러 제도를 마련한 사람들이지요.


정도전, 조준을 비롯해 정인지, 신숙주, 한명회 등이 대표적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사림파로,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향촌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키우는 데 힘쓰며 도덕과 의리를 중시한 사람들입니다.


주로 길재의 제자들이 많았는데, 김종직, 김굉필, 조광조 등이 이들에 속합니다



사림파와 훈구파의 전쟁이 시작됐지요.


그런데 훈구 세력들이 넓은 땅을 차지하고 각종 비리를 저지르자, 성종은 김종직을 비롯한 사림파를 등용했지요.


그들은 주로 삼사의 관리가 되어 훈구 세력을 비판했어요.


당연히 훈구파는 사림파에 대한 불만이 커졌고, 어떻게든 사림파를 정계에서 몰아내려 한 것이지요.



이러한 훈구파와 사림파의 갈등은 연산군 이후 네 차례에 걸쳐 일어난 사화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사화(士禍)란 선비가 화(재앙)를 당했다는 뜻인데, 연산군 때에는 무오사화와 갑자사화, 중종 때는 기묘사화, 명종 때는 을사사화가 일어났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림파가 피해를 입어 죽거나 유배를 갔지요.



조의제문 : ‘의제를 조문하는 글’이라는 뜻으로, 항우가 폐위시킨 중국 초나라의 마지막 왕 의제를 애도하는 글을 말합니다.



흥청망청이라는 말은 어떻게 생겼나요?


성종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연산군은 생모 윤씨를 죽게 만든 대신들을 억누르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바른 말을 하는 관리들을 죽였습니다.


특히 사림파들을 미워했지요. 또 성균관을 놀이터로 만들고, 백성들의 집을 부순 후 사냥터로 삼았으며, 한글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특히 궁궐에서 춤과 노래를 담당하던 여자들을 ‘흥청’이라 부르고, 그들과 함께 잔치를 자주 벌였지요.



이를 보고 백성들이 ‘이렇게 흥청거리다간 나라가 망해버리겠다.’라고 탄식했는데,


여기서 ‘흥청망청’이라는 말이 생겼대요. 이처럼 많은 잘못을 한 연산군은 결국 신하들에게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붕당(朋黨) - 벼슬자리 하나가 붕당을 만들다


다시 일어서는 사림파


네 차례의 사화로 많은 피해를 입은 사림파는 지방에서 서원과 향약을 토대로 힘을 길렀습니다.


그러다 선조가 인품과 덕망이 높은 사림들을 등용하면서 다시 정치를 주도하게 되었지요.


나랏일을 비판할 수 있는 언론 활동에 적극적이었고, 여론을 정책에 반영하기도 했지요. 또 학문 연구도 활발히 전개했습니다.



사림파가 정치를 주도하게 되자, 가까운 지역에 살거나 비슷한 학문을 하는 사람들끼리 집단을 이루었는데, 그것이 붕당입니다.


특히 선조 때 이황, 조식의 학문을 이어받은 경상도 출신 사림들은 동인으로,


이이와 성혼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충청도와 경기도 출신 사림들은 서인으로 나뉘었지요.



왜 갈라서게 된 걸까요?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진 이유는 바로 ‘이조 전랑’이라는 벼슬자리 때문이었습니다.


이조 전랑은 내외 문관(지금의 공무원)을 추천하고 뽑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데,


선조 때 이 관직을 차지하기 위해 심의겸과 김효원이 대립하면서 사림들도 갈라졌습니다.



당시 김효원의 집이 서울의 동쪽인 건천동에 있고,


심의겸의 집은 서울의 서쪽인 정릉에 있어서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각각 동인과 서인으로 부른 겁니다.


처음에 동인과 서인은 서로를 비판하며 바르게 정치를 했지만,


점차 자기 당파의 이익만 앞세우거나, 권력을 잡기 위한 경쟁으로 나랏일을 그르쳤습니다.



 ‘주초위왕(走肖爲王)’이 무슨 뜻이에요?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이 된 중종은 사림파를 다시 불러들였습니다.


이때 중종의 사랑을 받으며 등장한 사람이 조광조입니다.


조광조는 천거를 통해 관리를 뽑는 현량과를 실시했는데, 이를 계기로 많은 사림파가 다시 관직에 나갔습니다.


또 거짓으로 얻은 공신의 지위를 없애자고 주장해 훈구파의 불만을 샀지요.



결국 훈구파는 조광조를 제거할 음모를 꾸몄어요.


이들은 나뭇잎에 꿀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글씨를 써 벌레가 글자 모양대로 갉아 먹게 했습니다.


그런데 주(走)와 초(肖)를 합하면 조(趙)가 되어, 주초위왕은 곧 ‘조씨가 왕에 오른다.’는 뜻으로 해석되었지요.


마침 조광조의 과격한 개혁에 싫증이 난 중종은 이를 꼬투리 삼아 조광조와 사림 세력을 몰아내 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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