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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책

[제이노엘] [장영실] 세종이 사랑한 조선 최고의 발명가

by 제이노엘 2018.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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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이노엘 입니다.



어렸을 적 저의 꿈은 과학자 였습니다. 왜냐하면 장영실 위인전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릴 적 처음으로 읽었던 위인전이 장영실이었지요~


다른 위인전보다 재미있다고 어머니가 먼저 주셨거든요.


장영실은 겨울철 얼음판 위에 썰매를 탈 때에도, 다른 친구들은 나무판만 대어 탈 때


쇠를 대어 썰매가 보다 더 잘 미끄러지게 만들어서 사용했다는 책의 내용을 아직 기억합니다.


아무튼



장영실 - 노비에서 위대한 과학자로!


우리나라의 대표 과학자, 장영실


장영실은 조선 전기 세종 때 활동하던 과학자로, 우리나라 최초의 물시계인 자격루를 만들었고,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발명한 사람입니다.


원래 장영실은 경상도 동래현 관아 기생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조선 시대에는 어머니가 기생이면 자식은 노비가 되어야 했기 때문에 장영실은 관청의 노비로 살았습니다.



여러 가지 물건을 고치는 재주가 뛰어났던 장영실은 노비 생활을 하며 관아의 기구들을 과학적으로 바꾸고,


영남 지방의 가뭄을 이겨 내는 데 재주를 발휘해 마침내 멀리 한양의 궁궐에까지 그 이름이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신분을 가리지 않고 널리 인재를 찾던 세종 대왕에게 발탁되어 노비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장영실의 활약


궁궐로 들어간 장영실은 천문 관측을 위한 간의대 등을 만드는 것을 감독하였고, 


이천 등과 함께 천문 관측용 간의, 혼천의, 금속 활자인 갑인자 등의 제작에도 힘썼습니다.


또 우리나라 최초의 물시계인 자격루, 해시계인 앙부일구, 태양의 높이와 뜨고 지는 것을 측정하는 규표 등 많은 과학 기구를 발명했지요.



특히 1441년에는 세계 최초로 측우기와 수표를 만들어 하천의 범람을 미리 알고 대처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 공으로 장영실은 상호군이라는 벼슬까지 올랐으나,


이듬해 그가 만든 임금님의 가마가 부서져 매를 맞고 관직에서 쫓겨났습니다.


그후 그의 행적은 알 수가 없다고 하지요.









대표적인 발명품 - 이젠 농업도 과학적으로!


조선은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정책적으로 농사를 장려했습니다.


이러한 국가 정책에 힘입어 과학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방법과 농업 기술을 연구하게 되었고,


농업도 과학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많은 과학 기구가 발명되었습니다.



특히 세종 대왕 때에는 집현전 학사들과 장영실의 힘으로 여러 방면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지요.




해시계(앙부일구)


세종 대왕의 명령으로 장영실이 만든 ‘앙부일구’는 솥 모양의 해시계라는 뜻입니다.


지구를 반으로 자른 듯한 모양인데, 청동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속에 침을 세워 놓아 그림자의 길이에 따라 절기를 재고, 그림자 끝의 위치에 따라 시간을 알 수 있게 했습니다.



이 해시계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만든 공중 시계라고 할 수 있어요.


사람이 많이 오가는 큰길가인 종묘 앞에 세워 놓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시간 옆에는 쥐, 소, 호랑이, 말 등의 동물을 그려 놓아 시간을 알 수 있게 했습니다.


정말로 백성을 생각하는 세심한 배려라고 할 수 있지요?


물시계(자격루)


그런데 해시계는 밤에는 볼 수 없었습니다. 또 낮이라 하더라도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오면 시간을 잴 수 없었지요.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것이 자격루입니다.


자격루는 물을 넣은 항아리의 한쪽에 구멍을 뚫어 물이 흘러나오게 만든 기계로,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의 양을 이용해 시각에 따라 저절로 울리게 만들었지요.


일종의 자동 시간 알림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격루는 2시간마다 한 번씩, 하루에 12번씩 종을 쳐서 시각을 알렸는데, 세종 16년에 경복궁 경회루 남쪽에 있는 보루각에 세워졌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자격루를 가리켜 그 장치가 움직이는 것이 귀신과 같다고 감탄했고, 세종 대왕도 그 우수성을 크게 칭찬했다고 합니다.



측우기


농사에서는 비가 얼마나 내렸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연히 농업 국가인 조선에서도 비가 온 양을 정확히 알기 위해 애썼지요.


옛날에는 비가 내려도 정확한 강수량을 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흙을 파헤쳐 빗물이 스며든 깊이를 재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렸는지를 측정해야만 했지요.


하지만 빗물이 스며든 깊이는 땅의 성질이나 위치에 따라 달랐습니다.



이를 답답하게 여긴 장영실이 물통에 떨어지는 빗물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1441년)입니다.


높이 31.5cm, 지름 15.3cm의 측우기는 원통형으로 생겼고, 표면에 대나무처럼 도드라진 마디가 있습니다.


비가 와서 원통형의 측우기 안에 빗물이 고이면 주척이라 부르는 자로 측우기에 고인 물을 재서 강수량을 측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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