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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책

[제이노엘] [신라의 여왕] 선덕 여왕, 진덕 여왕, 진성 여왕

by 제이노엘 2016.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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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이노엘입니다.



신라의 여왕님들에 대해 알아봅시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선덕(善德) 여왕 : 신라 제27대 왕, 632∼647년 동안 신라를 다스림.

진덕(眞德) 여왕 : 신라 제28대 왕, 647∼654년 동안 신라를 다스림.

진성(眞聖) 여왕 : 신라 제51대 왕, 887∼897년 동안 신라를 다스림.


이런 여왕님이 계셨던 것이지요.



우리가 아는 여왕들은 많습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도 있고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도 있고

흠~ 그러게요 또 누가 있을까요? ㅋㅋ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하게도 신라에만 여왕이 있었답니다.


신라에만 여왕이 있는 이유를 알아볼까요 그럼?


선덕 여왕, 진덕 여왕, 진성 여왕! 모두 신라의 왕입니다.


고구려와 백제는 물론 그 이후 고려나 조선에도 여왕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신라에만 독특하게 여왕이 있었을까요?


바로 신라만이 가지고 있던 골품제라는 신분 제도 때문이라 볼 수 있습니다.


골품제에서는 한정된 신분만이 왕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여자만 남게 되면 여자가 왕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신라에만 여왕이 있었던 이유는 골품제라는 신분 제도 안에서 적당한 자격을 갖춘 인물을 찾다 보니 그렇게 된 거죠.


신기하지 않습니까? ㅋㅋㅋ




선덕 여왕은 아버지 진평왕의 뒤를 이어 신라 최초로 여왕이 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왕에게 아들이 없는 경우 동생이나 사위가 왕위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딸이 왕위에 오른 것은 매우 특별한 경우였지요.


아들이 없던 진평왕은 큰딸 덕만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했고, 덕만은 성골이었으므로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덕만이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부족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진평왕은 결국 덕만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는데, 그건 진평왕의 권력이 강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합니다.


선덕 여왕은 나라를 다스리는 16년 동안에 미리 알아맞힌 일이 세 가지 있었답니다.


선덕 여왕의 지혜로움을 알려주는 내용의 설화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어.


삼국유사는 일연이지요. ㅋㅋㅋ







선덕 여왕이 죽자 이제 성골은 정말 귀한 존재가 되었고, 단 한 사람만이 남았습니다.


그가 바로 선덕 여왕의 사촌 동생인 진덕이었구요, 또 다시 진골들은 여성을 왕으로 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다가온것입니다.


진덕 여왕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건 마지막 남은 성골이었기 때문이죠.


진덕 여왕은 “신장이 7척이고 손을 내리면 무릎을 지났다.”라고 하는데, (1자 = 1척 = 약 30.30cm)


이것은 진덕 여왕이 부처와 같은 신체 조건을 지녔다는 걸 강조하여 좀 더 신성하게 보이려는 의도겠지요?


당시 진덕 여왕은 김춘추, 김유신 세력이 실제 권력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정책을 주도하지 않았습니다.




진성 여왕이 왕위에 오른 시대에는 진골 귀족들의 왕위 다툼이 심해 사회가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런데도 여자의 몸으로 왕위를 계승했다면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겠지요?


진성 여왕의 아버지 경문왕은 47대 임금인 헌안왕의 사위였는데, 아들이 없던 헌안왕은 사위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죠.


그런데 이에 불만을 가진 세력들이 반발하자 경문왕은 이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며 제도 개혁, 학문 진흥을 통해 어느 정도 왕권을 강화할 수 있었고,


아들인 정강왕에게 왕위를 넘겨줬습니다. 그런데 정강왕에게도 아들이 없었는데 ㅜㅜ


이에 정강왕은 여동생이었던 진성 여왕에게 왕위를 물려주었고,


정강왕은 누이가 왕으로서의 자질이 충분하다고 보고 누이를 왕위에 즉위시키도록 유언을 남겼대. 이렇게 해서 마지막 여왕이 탄생한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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