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역사책

[제이노엘] [위화도 회군]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

by 제이노엘 2017. 11. 5.
728x90
반응형

안녕하세요, 제이노엘 입니다.



드디어 고려의 마지막 이야기를 전해 드리게 되었습니다.


최수종 왕건이 세운 고려가 결국 망하고 새로운 조선이 건국 된 이야기를 들려드리지요.



“기동아~ 은행에 가서 세금 좀 내고 오너라.”


“어린이가 어른이 할 일을 하면 안돼요.”


“그럼 가게 가서 두부 한 모 사오너라.”


“더워서 안돼요. 그리고 짝꿍이 놀러올 수도 있어요.”


“뭐라고?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야?”


“엄마는 이성계의 4불가론도 몰라요?”


“4불가론?”






위화도 회군 - 군사를 돌려라!


1388년 5월, 요동 정벌을 떠났던 이성계는


군사를 이끌고 되돌아와 최영을 귀양 보내고,


우왕을 왕위에서 물러나게 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원나라를 멸망시킨 명나라는 고려와 처음에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나더니


공민왕이 회복했던 철령 북쪽의 고려 땅을 돌려달라며 요구해 왔지요.



고려 조정에서는 이를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했는데,


당시 높은 관직을 차지하고 있던 최영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명이 차지하고 있는 요동 지역도 원래 고려의 영토였다며, 오히려 요동 정벌을 주장했어.


최영의 명에 따라 이성계는 5만 명의 군사를 끌고 요동 정벌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압록강의 위화도까지 간 이성계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불복종했습니다.



〈4불가론〉


장마 때문에 위화도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게 되고 보니 마음이 달라지는군.



1. 작은 나라가 큰 나라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


2. 농사가 바쁜 여름철에는 군사를 동원할 수 없다.


3. 명과 싸우는 사이 분명 왜구가 쳐들어 올 것이다.


4. 장마철이라 덥고 습해서 활의 아교가 풀어지고, 전염병이 유행할 것이다.


당장 말을 돌려라. 개경으로 돌아간다.



이 사건을 위화도 회군이라고 합니다.


이성계는 개경으로 돌아와 최영을 제거하고, 우왕 대신 9세의 창왕을 왕위에 앉혔습니다.


그리고 1년 만에 다시 공양왕에게 왕위를 잇도록 했지요.


이성계는 삼군도총제사가 되어 모든 군사력을 장악하고,


강력한 군사적 기반 위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왜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 후에 곧바로 왕이 되지 않았나요?


성리학에는 천명(天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늘의 뜻이라는 말이지.


왕이 민심을 잃으면 역성 혁명으로 왕의 성씨가 바뀌는 일도 있는데,


이것은 백성의 민심이 곧 천명이기 때문입니다.


이성계는 민심을 얻기 위해 치밀한 계획하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과전법 실시 - 권문세족이 가진 땅을 다시 나누자


이성계 일파는 위화도 회군으로 군사력을 갖춘 후 경제력과 정치력을 차지하기 위한 각종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정도전, 조준 등의 신진 사대부 세력과 손을 잡은 이성계는


성리학을 공부한 신진 사대부들의 새 세상을 향한 열망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동안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친원파인 권문세족들이 만든 각종 제도들이지요.



특히 신진 사대부들이 노렸던 것은 그들이 불법으로 차지한 농장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사회 모순의 근원이 문란한 토지 제도였기 때문이지요.


토지 제도 개혁을 가장 큰 목표로 삼고 1391년 과전법을 발표했습니다.


권문세족이 차지한 농장을 몰수하여 신진 사대부들이 다시 나누어 갖는 법이었지요.



과전법과 전시과는 관리에게 토지를 주고 세금을 걷을 수 있는 권리를 준다는 점은 똑같지만,


전시과와 달리 과전법은 경기도의 토지에만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 차이가 있습니다.


경기도 이외의 지역에서는 세금을 왕에게 내기 때문에


왕의 경제적인 기반이 더욱 확고해지는 겁니다.


반대로 권문세족은 몰락해 갔지요.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 - 새 나라를 세우자


새로운 개혁을 진행해 가면서 신진 사대부들의 의견은 크게 두 가지로 갈라졌습니다.


정몽주, 길재와 같은 온건파는 잘못된 제도를 고쳐서 고려 사회를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이와 다르게 정도전, 조준 등의 급진파는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를 세워야 한다고 했지요.


이성계의 친척인 공양왕을 왕위에 앉힌 것도 그 때문입니다.


아버지 이성계를 왕으로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던 이방원은 정몽주를 만났습니다.


둘은 아래와 같은 시를 주고받았지요.






결국 정몽주를 설득하는 데 실패한 이방원은,


조선 건국에 방해가 된다며 자객을 보내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죽여 버렸습니다.


이성계와 급진파 신진 사대부들은 1392년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고 이성계는 왕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성계는 처음에는 사양하는 듯 3번 거절하다가 계획대로 왕이 되었지요.


500여 년 동안 끊임없이 외적의 침입을 받으면서도 버텨왔던 고려는 위화도 회군 후 4년 만에 멸망했습니다.



두문불출(杜門不出)은 꼼짝하지 않고 들어 앉아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