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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책

[제이노엘] [이성계] 조선을 건국한 위대한 왕

by 제이노엘 2017.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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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이노엘 입니다.



고려가 멸망 하고 조선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아직도 남아 있다는 북조선인민공화국 은 여담이고


아무튼 조선 이야기를 같이 나누어 봅시다.



동구릉으로 소풍을 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미리 임금님의 무덤이 많이 있는 곳이라고 말씀해 주셨지요.


동구릉에 도착해서 둘러보니, 정말 많은 무덤이 있더라구요.


선생님께서는 ‘능’이란 임금님과 왕비의 무덤을 말하며, 특히 건원릉은 태조의 무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이게 바로 왕건의 무덤이에요?”라고 말했지요.


그런데 아이들이 막 웃는 겁니다. 도대체 아이들이 왜 웃은 걸까요?



뛰어난 장수 이성계 - 이성계가 왕이 된 이유는 뭘까?


젊은 날 이성계는 훌륭한 장군!


조선을 세운 사람은 태조 이성계입니다.


이성계는 고려가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1335년에


함경도 영흥의 관리인 이자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이성계는 어려서부터 무예가 뛰어나 주위에서 칭찬이 자자했지요.


특히 활솜씨가 매우 뛰어나 누구도 따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1361년 이자춘이 세상을 떠나자,


고려는 이성계에게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동북면 병마사의 벼슬을 내렸습니다.


그때 고려는 북에서 홍건적, 남에서 왜구가 쳐들어와 나라가 매우 어지러웠지요.


이때 이성계가 홍건적과 왜구를 무찌르면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특히 부하들에게 늘 너그럽고 백성들을 아꼈던 이성계는 나라 안에서 큰 지지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 무렵 명나라는 고려가 되찾은 땅을 돌려달라고 했지요.


그러자 고려는 안 된다며 명나라의 요동 땅을 정벌하려 했지요.


그때 이성계는 ‘4불가론’을 내세우며 반대했습니다.



결국 요동 정벌에 나선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린 후 개경으로 돌아와 정권을 잡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이성계를 따르던 사람들이 큰 정치 세력을 만들었고,


기울어 가는 고려 대신 새 나라를 세우고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꿈에 얽힌 이성계 이야기〉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 낮잠을 자는데 자신이 서까래 세 개를 등에 지고 ‘꼬끼오’하고 우는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학대사를 찾아가 해몽을 부탁했지요.


그랬더니 무학대사는


“이 꿈에서 서까래 세 개는 ‘임금 왕(王)’자를 의미하고,


꼬끼오는 한자로 ‘고귀위(高貴位)’, 즉 가장 높고 귀한 자라는 뜻입니다.


장차 왕이 되실 꿈을 꾼 것입니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성계는 정말로 조선의 왕이 되었습니다.




조선 건국 - 조선의 성립을 선포하다!


드디어 새로운 나라가 세워졌어


이성계를 따르는 사람들은 권문세족들의 횡포로 어려워진 고려를 버리고 새 나라를 세우고자 했습니다.


결국 1392년 7월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지.



왕이 된 이성계는 신하들과 새 나라의 이름을 의논했습니다.


신하들은 회의 끝에 단군이 세운 조선의 문화와 전통을 계승한다는 뜻을 담은


‘조선(朝鮮)’과 이성계의 출생지인 ‘화령’을 새 나라의 이름으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명나라 황제에게 둘 중 하나를 나라 이름으로 정해 달라고 했지요.



하지만 명은 ‘조선’을 고를 수밖에 없었어요.


왜냐하면 ‘화령’은 몽골 제국의 수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해서 명이 선택하기 힘든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조선’이라는 국호가 결정되는 과정을 잘 보아야 합니다.


조정에서는 이미 국호를 ‘조선’이라 정해 놓고 안 될 게 뻔한 ‘화령’을 끼워 넣어 생색을 낸 거죠.


당시 대국인 명에게 예의를 갖추면서도 실속을 챙긴 거지요.




새로운 국가 탄생의 의미


‘조선’이라는 국호는 민족의식을 한 단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려’는 ‘고구려’의 영광을 계승한다는 뜻이 담겨 있어,


신라와 백제 사람들에게는 큰 호응을 얻을 수 없었지요.


그런데 국호를 ‘조선’이라고 정하면서 다 같은 고조선의 후예라는 더 넓은 차원의 민족의식이 생겨난 겁니다.



조선 시대의 왕들은 죽은 후에 자신이 살았던 일생을 평가 받았어습니다.


시호(諡號)와 묘호(廟號)가 그것이지요.


시호는 살았을 때의 공덕을 기리는 칭호이고,


묘호는 임금이 죽은 후 왕실의 제사를 지낼 때 쓰는 호칭입니다.



묘호의 뒤에는 ‘조(祖)’와 ‘종(宗)’이 붙는데, 보통 조는 공(功)이 탁월한 왕에게 붙이고,


이에 비해 덕(德)이 뛰어난 왕에게는 종을 붙였습니다.


주로 나라를 세웠거나 전쟁에서 백성을 구한 큰 업적이 있는 왕이나,


왕조가 끊어질 위험을 극복한 왕들이 조가 된다고 할 수 있지요.



예를 들면 태조 이성계, 세조, 선조, 인조, 영조, 정조, 순조 등이 있지요.


한편 덕으로 나라를 다스린 왕이나 중흥 군주에게는 종을 붙입니다.


하지만 연산군이나 광해군과 같이 쫓겨난 왕에게는 ‘군(君)’이라는 호칭을 붙었습니다.


이들은 왕의 자격을 박탈당해서 종묘상의 묘호도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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