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제이노엘입니다.
백제의 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백제의 왕 중에 성왕이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창세기전이라는 게임에서도 나오는 성왕입니다.
성왕 라시드 말이죠 ㅋㅋㅋ
모르시는 분들은 패스, 아는분들은 그냥 추억풀이 바랍니다. ^^
백제는 고구려 장수왕에게 빼앗긴 한강을 다시 찾고 싶어하였습니다.
성왕은 백제를 크게 확장시키기 위해 수도를 옮겼습니다. 웅진을 본진으로 두고 다른 곳을 멀티로 까기엔 웅진이 별거 없었나 봅니다.
그래서 다시 도읍을 옮기기로 했는데 이곳이 사비라는 곳입니다. 사비는 지금의 부여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름도 남부여라고 고쳐버렸는데, 이유는 고구려와 백제는 형제국이 아니라는 것을 공표한 것이겠지요.
즉, 고구려에 대한 선전포고라 볼 수 있겠습니다.
(원래 부여 사람이 고구려를 세웠고, 고구려 사람이 백제를 세웠다는 그런 생각이 박혀서, 남부여로 고쳤던 것 같습니다.)
(그럼 결국은 고구려인이 아닌 부여인의 의지를 이은 것 처럼 눈속임이 가능하니까요)
성왕은 사비를 새로 본진 삼아 나라를 발전시키려 노력했습니다. 중앙에 22개 관청을 만들어 부서에게 일임하고,
수도는 5부로 나누고, 지방은 5방으로 나누어, 왕의 명령이 지방에도 잘 전달 되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했습니다.
백제는 특히 남조와 교류하며 문화를 많이 받아먹었는데요, 예전 침류왕 때는 중국에서 불교과 들어왔습니다.
동진에 살던 인도 승려가 직접 백제에 와서 불교를 전했다 합니다.
그리고 그 받은 불교를 일본에도 전해 주었지요
백제의 수도가 어찌 변했는지 위 그림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위례성은, 건국한 온조왕부터 개로왕까지
웅진성은 문주왕부터 성왕까지
사비성은 성왕부터 의자왕까지
이렇게 살았습니다.
성왕은 사비를 도읍으로 삼고 다시 백제를 일으켜 한강을 되찾으려 하였습니다.
그래서 동맹국인 신라와 손을 잡고 한강을 되찾았지요.
그.런.데.
한강을 먹고 싶어하는 또 하나의 왕이 있었으니, 그의 나라는 신라요, 칭호는 진흥왕이라 하는 분이
성왕과의 동맹을 깨버리고 한강을 먹어버렸죠.
이에 빡친 성왕이 신라랑 싸웠는데, 이러다가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당시의 관산성에서 숨을 거두었고, 지금 지명은 충북 옥천입니다.
성왕의 군대를 쳐부순 신라의 장군은 김유신 장군의 할아버지인 김무력 장군이라 합니다.
여기서 성왕은 본인도 전사하고, 병사도 3만이나 잃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제 더이상 백제와 신라는 동맹 관계가 아니었고, 백제는 다시 고구려와 손을 잡고 신라와 맞서 싸웠습니다.
믿는도끼에 발등이 찍히다 못해 심장이 찍힌 백제는 고구려와 손잡고 신라에게 러쉬를 가했습니다.
궁남지는 634년(무왕35년)에 왕궁의 남쪽 별궁에 만든 사비 시대의 별궁 연못입니다.
주변에 백제 시대의 논과 도랑의 흔적이 남아 있고, 사비 도성의 구조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발견되었다 합니다.
백제의 마지막 임금인 의자왕이 즉위하면서 백제는 신라와의 싸움이 더욱 더 치열해졌습니다.
백제는 고구려와 손잡고 신라와 중국의 연결을 끊기 위해 예성강 입구에 당항성을 공격했다 합니다.
그러나 신라는 어찌어찌 하다 중국와 연락이 되었고, 당나라와 동맹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 + 소정방이 이끈 당나라군 이 공격을 하자
백제의 계백 장군은 결사대 5천명을 이끌고 황산벌(충청남도 연산)에서 나당연합군을 상대로 싸웠으나 결국에 계백장군도 숨을 거두었지요.
계백장군이 숨을 거두어 의자왕은 나화암에서 떨어진 삼천궁녀의 전설과 함께
백제의 마지막 왕이자 임금으로 생을 마감하였고 오늘날 우리에게 역사를 남겨 주었습니다.
백제 멸망 이후 당나라는 백제 땅에 웅진 도독부를 두고 직접 백제를 다스리려 했었습니다.
하지만, 백제의 유민들이 다시 백제를 일으키고 당나라군을 몰아내려 백제 부흥운동을 펼쳤지요.
일본에 가있던 왕자 풍을 백제의 임금으로 세우고 다른 힘있는자 모두 끌어 모아 최후의 결전을 펼쳤으나
그건 최후의 발악이었을 뿐 필살기가 되지 못해 백제는 완전히 무너져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나라를 잃은 서러움은 어디서 보상받아야 하나요 ㅜㅜ
부여 능산리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 대향로의 원래 이름은
백제금동용봉봉래산향로
라고 합니다. 아이고 어려워라...
제사 지낼 때 향으로 피우는 도구였는데, 너무 화려하지요?
백제인들은 저렇게 아름다움을 추구했었고 오늘날 우리가 더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미적 기준은 연꽃과 용의 모양이었나 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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